추둘란 집사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변명은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
언제부터인가 다육식물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
다. 하나씩 구입해 앙증맞은 화분에 심어놓고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
런데 다육식물은 새끼를 잘 치므로 사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공짜로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짜로 얻으려는 그 작은 마음의 틈이 크나
큰 죄로 연결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욕심이 큰 욕심으로 변해
어느 집에서건 다육식물 한 뿌리를 떼어 달라고 하면 선뜻 떼어주었습니다.
문제는 주인이 없을 때였습니다. 말만하면 두말없이 떼어줄 정도로 친한 집
인 경우, 우선 한 뿌리 표시 안 나게 떼어간 다음 나중에 말해도 괜찮겠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떼어갔노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서너 번 하다 보니 말하는 게 번거로워 아예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육식물만 탐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모종에서 제법 키가
큰 모종까지 몰래몰래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책감을 갖
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영의 눈이 멀어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나에게 급기
야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그날, 꽃모종 하나를 뿌리째 뽑아가는 것을 그이가 보았는지 아닌지는 지금
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이가 어느 날부턴가 내 인사를 받지 않는 듯 하자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시작하고 그 장면을 목격한 게 틀림없다고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십
계명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죄가 들어오면 관계가 깨어진다’고 성경공부 시간에 배웠는데 그 말씀대
로였습니다. 그이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데도 마음이 불편해졌고 일
부러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나빠졌습니
다. 제자리에 도로 심어놓아야 한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계속하여 주셨지만,
핑계가 먼저 앞섰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도로 심어놓습니까? 그이가 또 보면 어쩌라구요? 이번까
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해주세요.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습니다. 저는 돈
이나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닙니다. 식물 한 뿌리 뽑아왔다고 무슨 표시가 나
겠습니까? 번식 잘 하는 것들이니 빈자리는 금방 메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하여 제자리에 돌려놓길 원하셨고 며칠 후 저는 마지
못하는 마음으로 꽃모종을 제 자리에 도로 심었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
지만 완전한 해방감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훔친 행위보다 더 크
고 중요한 죄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속 묵상하는 가
운데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고 수백 번도 더 말해왔건만 정
작 훔치는 그 순간,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
며 사람의 눈은 두려워하여 어쩔 줄 모르면서 하나님의 눈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돈이나 물건이 있었다면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
고 발뺌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훔친 대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나님의
계명을 잊어버릴 정도로 탐심에 쏠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다른 일로 하나님
은 당신과의 관계를 한
번 더 점검해 주셨습니다. 나는 요즘 초보운전이라 읍내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는 일이 무척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야만
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읍내를 나갔고 무사히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데 볼일을 다 마치고 주차장을 나오려하다가 간발의 차이로 옆 차의 범퍼를
긁고 말았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의 긁힘이었습
니다. 그 순간, 한 번 더 하나님과 내 자신을 속이고 말았습니다.
“차 주인이 없잖아. 저 정도 긁힘은 아무 것도 아니야. 주인이 있다고 해
도 눈감아 주겠네.”
연락처라도 적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괜찮아, 괜찮아. 다
음에 주의하자. 물어달라고 해도 물어줄 돈도 없어. 남들도 다 그럴 거야’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나님은 나의 양심을 향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
습니다. ‘정직하게 연락처를 남기는 것이 그리도 두려웠느냐? 혹여 상대방
이 배상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만한 돈 채워주지 않을 정도로 인
색한 분이겠느냐? 그 상황에서 도망
을 가는 너와 정직하게 배상해 주려는
너, 어느 쪽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겠느냐?’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하더니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
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게 하셨습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여러 번
경험하고도,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내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여 하나
님을 인색하기 그지없는 분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사실 깨달아
아울러 빠듯한 살림을 핑계 대는 내 모습이 하나님 앞에 발가벗겨진 듯이 느
껴졌습니다. 공짜를 바라는 그 마음이 ‘나는 늘 가난해요’라는 불평이요,
배상을 두려워하여 도망가는 내 모습이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주시지 않아
요’라는 불만을 토해 놓은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큰 허물이건만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 가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빨리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큰 죄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무엇보다 크나큰
죄를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나는 여전히 죄가 죄인 줄도 모르
고 살았을
터인데….
회개는 잘못에서 돌이켜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행하지 않는 것이라 배웠
습니다. 배운 대로 다시는 같은 죄 짓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이
렇게 죄인의 옛 습성을 하나하나 제거해 주시며 거룩한 하나님을 닮아가도
록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