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뿐이라면_데이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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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에 쓴 편지(47)

겸손뿐이라면

Mrs. Daisy Sung_미국 포들랜드 한인 문화방송실

“사람들 시선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미국은 역시 큰 나라이다. 빨리 교통하는 세상이 되었어도 지방과 큰 도시
의 차이는 엄연하다. 어떤 유행이 시작되어도 한국처럼 꼭 온 나라를 휩쓸지
도 않고 어느 결에 슬쩍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유행들 많아

지방 고등학교를 마치고 명문대가 모여 있는 동부 쪽 큰 도시 학교에 다니
다 방학 때 집에 온 자녀들의 불평소리를 종종 듣는다. 지방색을 그대로 묻
히고 빨리 움직이는 큰 도시 생활전선에 준비되어 있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것이다. 사람이 착하고 순하면 남이 얕보고, 정도를 걸으면 손해 본다는 식
의 얘기다. 적당히 잘난 체하고 튀는 데가 있어야 인기도 있고 재미있어 한
단다. 집에서 사는 동안 동부 아이들보다 험한 세상에 잘 대처하며 살 수 있
는 경험이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전
부터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속성은 어느 곳에서
나 같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 의식은 자연히 생긴다. 그래서 깍쟁이
가 되고 야박해진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일수록 경쟁은 심해지고 남을 밟
고 올라서라도 위에 서려 한다. 당연히 양보나 겸손 같은 것은 그 가치조차 
없어진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잣대를 들고 서로 평가하며 학벌이 높으면 얼마나 높을
까만은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인 것을 사람을 가늠하며 훑어본다. 별것이 
아닌 것 같으나 유명인사를 가까이 알고 지내는 것도 자랑이요 쌓아온 지
식, 상식, 대화 중에 섞어 사용하는 영어단어나 중국문자도 자랑스러워 유식
함을 나타내고 싶어한다. 그것은 아마도 너무 자연스런 욕심인지도 모르겠
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좋고, 최고의 위치에 서고 능력 있고 잘 나가
면 무조건 좋아한다. 건방져지고 잘난 체 해지기가 쉽다. 사람의 머리는 벼
처럼 저절로 익혀지지 않아 목 굵고 어깨 힘주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겸손해야 된다는 것은 다 안다. 대통령으로부터 밑에 평범한 시
민들까지 그 겸손은 이웃과 사회를 따뜻하게 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기 때
문이다. 
겸손의 향기를 지닌 사람은 상대의 가슴에 편안함과 친근감을 주고 존경을 
받게 되는 기초적인 순서가 된다. 그러기에 예전에는 윗사람들이 먼저 깨친 
이로서 겸손의 예절을 가르쳤다. 겸손은 그렇게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깨쳐 배워야 한다. 나의 잘남, 나의 출세함은 나만을 위함뿐이 아니요 남을 
위해서도 쓰라 하신 하나님의 복이고 명령이다. 겸손해질 때에 순종할 수 있
는 힘이 생긴다.
한국 땅에서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것을 안다. 고갈되어 가는 남의 나라 
연료를 사용하면서 자가용은 도로를 넘치고 겨울이 되면 실내 온도를 높여 
반소매 입고 지내는 편리한 세상이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허나 그렇게 펑
펑 쓰며 잘 사는 것이 꼭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나라 전체가 나무를 때
고 연탄을 피우며 살던 때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풍요로움을 쉽게 생각하
고 자랑삼아 만끽할 수가 있는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함은 마음에 겸손함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의 극치
의 편리함과 사치를 위해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
나 들여다 보아야 한다. 남보다 빠질까봐 움츠려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듯한 분위기에 상처받고 우울해져 그냥 있을 수 없다
는 사회 분위기다. 
올 여름 6월 1일부터 중국정부는 무료로 쓰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상가에서 
사용금지 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자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도시
가 몇 있다고 한다. 그 공해가 얼마나 심한지는 알지만 생활의 편리함에 습
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특히 슬럼가가 많은 인디아에서 산더미 같은 쓰레기장에 어린이들이 모여 
그 더러워진 비닐봉지를 하루 종일 주워 모아 가족에 보탬을 하며 사는 모습
이 어쩌다 TV에 보여 진다. 먼 나라 남의 이야기라고 한번보고 잊어버릴 일
이 아니다. 얼룩진 그 작은 얼굴, 작은 손의 어린이도 열심히 수고하는데 
각 가정에서 분리수거하거나, 이미 선구자들이 지향하는 대로 가방 시장 바
구니가 빨리 다시 돌아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보다 더 큰 가치에 바빠 시간 없는 고급 직종의 종사자라면 몇 푼 가
치도 없는 일이라고 신경 쓸 여지도 없이 무시해 버릴만한 일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은 한 장 더 써버린 비닐봉지는 어느 손에 어느 가정
을 
거쳤든 자연에 나가면 똑같은 공해가 되어 땅을 괴롭히게 된다. 비록 넘
치는 돈으로 주체할 수 없는 부가 있는 사람이라도 마음에 겸손함이 있다면 
누가 쓰고 버리든 똑같은 쓰레기임을 인지해야 되지 않을까.

누가 버리든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보이는 겸손이 척하는 겸손뿐이라면 그것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
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남을 무시하지 않고 자만감으로 건
방 들게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혹 잘난 사람들 앞에 남의 눈에 초라해 보일
지라도 나를 인정하고 나를 올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일 때 담대하고 
자신 있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