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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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영규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합리주의가 독단에 빠질 때 신비주의로 발전해

지난 2007년 12월 독일 궤팅겐에서 개최된 ‘영장동물의 행동과 인간 보편
성’이란 주제로 영장동물과 다른 인간의 독특성에 관한 국제적 학술회의의 
결과들에 대한 뉴스기사가 Science 과학잡지에 실렸다. 

격세지감 느끼게 한 학술대회

1938년에는 독일학자조차도 동물과 다른 인간의 독특성에 대한 주제를 다룬 
논문을 독일잡지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못하고 화란학자의 이름으로 
출판하였다가 제 2 차 세계대전 후에나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였던 
독일의 학문세계를 기억할 때, 그런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독일에서 그것
도 히틀러 시대의 학문적 최대 중심지이었던 궤팅겐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관심이 되고 있다. 
식물이나 동물의 연장선에서 인간
의 독특성을 이해하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
의 철학의 경우처럼 인간의 독특성을 사회적 동물이란 표제로 표현하려는 입
장은 이미 오래 전에 포기되었다. 일반적으로 합리적 인간(homo sapiens)이
나 유희하는 인간(homo ludens), 혹은 웃는 인간(homo ridens) 등 다양한 인
간의 독특성도 동물세계의 신비 안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되고 있다. 그러
나 아직 동물 세계의 신비 안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고유성인 종교적 인
간(homo divinans 혹은 homo consecrans)이란 독특성은 증명되지 않고 있
다. 
자신을 초월한 존재를 가정하고 그것을 향하여 주술을 통해서 운명이나 복
을 비는 현상 자체가 인간의 원시역사로부터 과학의 기능적 시대에 이르기까
지 인간의 문명세계의 깊은 뿌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런 현상을 동물세계에
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인간학에서 동물과 다르게 인간에게 ‘본능으로부터 거리
를 갖는 행위’가 있다는 사실에 열쇠를 찾는 경향과 관련해서 비둘기는 더 
큰 보상에 대해서 3.5초보다 더 길게 인내하지 못하고 보상이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명주 원숭이의 경우에도 14초 이후에는 
약해지고 더 큰 보상
에 대해서 보노보 원숭이는 74초, 침팬지는 2분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역시 다른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일이 동물세계에서도 확인
이 되어도 인간 안에서처럼 마음의 원리와 같은 고도의 지적인 능력을 통해
서 본능으로부터 거리를 갖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다른 영장동물들 안에서도 인간의 문화행위들이 발견되어도 세대들을 
통해서 문화와 지식이 축적이 되는 그런 모방이 아니라 단지 흉내내는 행위
들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지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영장동물의 
경우에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 가는 어떤 것을 생산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는 이런 자연종교를 설명하는 인간의 보편성에 근거하여 발생한 
자연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오히려 인간의 독특성인 그런 종교성이 인간부
패의 가장 큰 원흉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
는 극한 합리주의의 정신을 요구하는 틀로서 성경에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들의 목록이 있는 것이다. 
최근 길이에 
있어서 58만 2천 9백 칠십 염기쌍을 가진 미코플라스마과 박테
리아 유전체의 완전한 화학적 합성, 조립 및 복제에 대한 성공이 언론에 오
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올리고 핵산염들이 시험 관 내에서 인공
적으로 재조합된 단계들은 그렇게 자랑할만한 것이 못되고 가장 중요한 단계
들은 자주 효소들이 사용이 되었거나 대장균 안에서 재조합 및 복제될 수 있
었고 더 효율성이 높은 인체에 유익한 효모균 안에서 생체 내 재조합 복제
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능력을 증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작은 미물인 효모들의 자
연적 생산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한 셈이고 그런 재조합 복제 숙주들의 
필연적 사용이 염색체 염기서열에 언제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확인 
한 것이어서 고등 생명체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고유한 유전자들과 유전
자들에 의해서 생산된 다양한 인자들에 의해서 촉진되거나 억제되어서 완전
한 생명체가 되고 그 생명체가 유지되는 그 영원한 신비에 대한 인간의 조작
능력의 한계를 더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런 과학적 결과를 체험하는 엄밀한 합리주의적인 사람들도 크게 

교적인 사람들임이 어디에서나 증명이 되고 있다. 종교적이지 않거나 종교
에 귀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나 허무감이 없는 합리주의자들일 
뿐이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 사회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이 그런 허무나 
회의가 없는 대표적인 합리주의자들이다. 
그런 합리주의가 실제적으로 엄밀한 과학주의와 강제로 결합하여 일상에서 
허무와 회의가 없는 극도로 통제된 독단주의로 빠질 때, 신비주의로 발전하
기 쉽고 거기에서 종교현상과 같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그 현
상에 대한 스스로 비판적 공간이 없는 사회로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는 점점 
더 병들어 많은 약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생에 있어서 방랑과 회의가 큰 문학적 합리주의자들은 그런 현실을 도피하
여 숨든지 혹 저항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법적인 합리주의자들은 극
도로 현실에 적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사회의 병을 고착화시키는 현상을 나
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다. 그 때 자유를 대표하는 언론마저 
함께 동조할 때 그 사회는 희망이 없어지게 됨을 보게 된다. 
기독교는 자연종교가 아니라 계시종교
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국가나 사
회 및 모든 만물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그 특징이다. 자신의 운명과 자연
의 절대적 필연성으로부터 그리고 인간의 병든 자유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하
는 틀이 그 교리들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예정론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저항의 논
리이요 끝까지 세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논리이며 세계를 영원히 비판하는 
종말론이다. 그러나 자연의 실재성이나 인간의 역사 및 우주의 실재성은 그
런 먼 원인에 있지 않고 여전히 극히 조화로운 하나님의 속성들에 종속된다
는데 그 신비가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된다. 

하나님께 종속된 우주만물

교회는 그 가치를 유지하는데 그 생명이 있고 반면 인류사회는 자신의 진정
성으로부터 교만하지 않는데 그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