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시험에 떨어져서 감사합니다
추둘란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시험 앞에서는 합격만이 전부일 수 없어”
작년에 남편은 네 발 오토바이를 구해주며 조심조심 타보라고 권하였습니
다. 네 발 오토바이는 시골 어르신들이 주로 타는 것인데 차도로는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고 농로로만 다니게 되어 있는 오토바이입니다.
나이 40에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
대개 시골의 젊은 아낙들은 트럭을 몰거나 스쿠터를 탑니다. 하지만 원래
겁 많은 성격에다, 기계 다루는 데 천성적으로 더딘 사람이 저인 것을 아는
남편이 스쿠터 대신 타보라고 구해 준 것입니다. 내 수준에 딱 맞는 네 발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 언덕도 올라가고 심방도 하고 온 마을을 누비는 기분
이 썩 괜찮았습니다.
그 정도만으로도 좋고 만족스럽기만 한데, 하나님은 제 수준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꾸만 제 마음 속에 운전을 배워야겠다
는 소망이 생기기 시
작했습니다. 인근 마을에 있는 목원들 심방은 문제가 없
는데 시내에 살고 있는 전도 대상자들을 심방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
다. 그리고 새해에는 민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는데, 방과 후 시내에 있
는 장애인복지관 치료실을 혼자 알아서 다닐 처지가 못 되기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쯤에 결심을 하고 목장모임에 이 기도 제목을 내놓았으니 꼬박 1년
을 기도한 셈입니다.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하나님만 믿고 2008년이 되자마
자 운전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코스시험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실격이었습니다. 15만원을 더
내고 일주일간 연습을 더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터덜터덜 학원을 걸어 나오
는데 비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30명 남짓 시험을 봤는데 떨어
진 사람은 단 두 사람. 그 중에 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요? 어제와 그제, 변속구간을 제외한 모든 코스에서 만점을 받
았잖아요? 경사로도 문제없었는데, 오늘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요?’ 하나님
께 그렇게 여쭈었지만 이유는 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어 변속
에 자신이 없어 그리 된 것입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첫날부터 제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도 있었습니
다. 첫날은 실내에서 비디오를 보며 자동차 모형을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런데 학원의 직원이 잘못하여 하필이면 1교시와 2교시 비디오의 순서
를 맞바꾸어 틀었습니다. 그 사실을 직원에게 말했지만 직원은 현장에 나가
면 선생님들이 다시 설명을 해 줄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자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화내며 다그치며 수업을 했기에
주눅이 들어 외워야 할 순서마저도 제대로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에서 기어 변속을 하려니 기어를 옮겨 놓고도 확인 차 한 번을 더 넣곤 할
정도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선생님은 직선코스 변속구간에서 아예 10점 감점을 각오하
고, 다른 코스에서 만점을 받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앞둔 이
틀 전부터는 선생님도 안심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합격만 시키려는 선생님의 마음과 제대로 배우
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시험 당일 하나님은 코스시험장
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경사로에서 저를 막으신 것입니다.
억울하고 서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운전에 관심도 없
던 사람을 여기까지 오게 하셨으면 합격의 기쁨을 주시고 그 영광을 받으셔
야지,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실 수 있나,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더 나아요. 지금 15만원 날리고 제대로 배우는 것
이 어설프게 배워 도로에 나갔다가 대형사고로 몇 천만 원 날리는 것보다 낫
다고 생각해.” 남편은 어렵게 배운 사람이 사고를 덜 내는 법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것도 큰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으나 아무 일도 손에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트럭 위에
올라탄 듯하고 멀미도 나는 듯 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크게 복음송
을 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왜 운전을 배우려 했던가?’ 하고 제 자신에
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원들을 섬기고 전도 대상자들을 심방하고 아들을 섬기기 위해서였는데, 영
육간에 연약하기 그지없는 그들을 태우고 운전할 사람이 기어 변속 하나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편법을 써서라도 면허만 따
면 된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디오에서는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 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
렁이고 가슴 아파도…’ 하는 복음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
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가는 그 길을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는
구나!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내게 실패를 주셔서 바르게 배우고 자신
있게 운전하라고 가르쳐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녁에 목장예배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복음송을 들을 때 하나님
이 제 마음을 만져 위로가 되었다고 말하자, 남편이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꽃꽂이며 요리며 글쓰기며…. 사람들이 뭐든 잘 하는 아내 두어서 좋겠다
고 하면 ‘운전은 내가 더 잘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사는 재미라도 있
지.”
실패해도 바르게 배우는 게 옳아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를 그 말에도 저는 더 이상 속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
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용기를
낸 저에게 어느 누구보다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분이라는 것
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