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슬로 쓴 편지>
호숫가에서
이영란 사모_좋은소식교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간이 아름다워”
교회가 얼마나 성장했느냐고 묻는 분들께 조금은 머뭇거리다가 호수에 얽힌
나의 러브스토리를 꺼낸다. 석촌동 먹자골목을 지나노라면 바로 길 건너 있
는 호수가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올해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가장 고마운
친구, 석촌 호수!
석촌 호수 벗삼고 보낸 한 해
특별했던 올 한해의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의 변화 속에서 항상 신실하고 좋
은 친구였다.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 가는 단풍 속에서 나 자신도 차분히 곱
게 물든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 색을 잡아보려고 사진도 많이 찍었
다.
호수 주위를 걸을 때마다 지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가 말을 건넨다. 작년
이맘 때 이 호숫가에서 그간 예비하신 개척성도들을 만났다. 밤이 맞도록 기
도하시고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갈릴리 호수였다. 애틋하고 애잔한 만남
이었다.
망망대해에서 돛단배 한 척이
항구를 찾아 항해하듯 십자가 세우라 하신 곳
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절히 기도해왔던 바 목
마르고 가난한 영혼들이 있는 곳이라는 확신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
로 이곳에 올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개척교회 사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된 나의 삶, 언젠가 다가올 수도 있
을 이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눌림으로
다가왔다. 우선 몸으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버거울 때마다 이곳을
찾아 걸으며 한없이 울었다. 지금도 이곳을 걷노라면 내 눈물이 호수에 고
여 있는 것만 같다. 울고 나면 눌림은 누림이 되어졌다. 그 가운데서 내 자
신이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계심을 보여 주실 때면 감사하고 기뻐서 날아갈 것 같
은 발걸음으로 찬양하며 걷기도 했다. ‘주님!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
다.’ 공중에 사무친 그분의 자비를 호흡했다. 그리고 매주일 선포되는 산상
수훈의 말씀을 읊조리며 더욱 온전케 되기를 갈망하기도 했다.
때때로 낮아질 대로 낮아져 가난하고 소심해진 내 영혼! 햇빛과 산들바람에
춤추는 나뭇잎 그리
고 이리저리 노니는 새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푸르고 싱싱
케 되는 것을 느꼈다. 늘 다짐하던 말씀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
래하며 찬양하리로다”(시108:1) 앞에서 노래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돌아
오기도 했다.
온힘을 다해 수액을 빨아올리며 자라고 있을 거목에 기댈 때는 주님의 은혜
의 물줄기를 느끼기도 했다. 이 나무처럼 주의 은혜로 교회가 자라고 있다
는 것을 확신하며 쳐진 마음이 활기를 얻었다.
교회가 설립된 4개월 후에 어린이 한 명을 보내주셨고 차츰차츰 몇 명의 어
린이들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공부방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성경학교를
하게 되었다. 기적 같은 성경학교를 마치고 교사들과 이곳에 와서 환희를 누
리기도 했다. 매직 아일랜드에서 들리는 함성소리를 들으면 그 때가 되살아
난다.
서쪽 호수에 있는 벤치에도 이야기가 있다. 잠시 말씀을 묵상하려는데 애완
견을 안은 아주머니가 살며시 다가앉았다. 외롭다고 했다. 자녀들과 같이 살
지만 하루 종일 아파트에서 지내야만 하는 우울증에 빠져들고 있는 분이었
다. 불자라고 하는 그 여인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였다. 목마른 이 여
인
을 향한 주님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이곳에 이와 같은 내 백성이 많
다. 찾아 만나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정념(Pathos)을 느꼈다.
얼마나 느리고 더디었던가. 느리신 하나님! 느린 변화! 내가 주저앉아 있을
때 조용히 옆에 와주셨고 내가 걸을 때는 함께 걸으며 조율해 주셨다. 새벽
기도 후 매일은 아니지만 호숫가로 나간다.
남편은 늘 그래왔듯이 지역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여 회원들과 식사도 하
고 교제도 한다. 자연스럽게 배드민턴장의 목자가 된다. 지난 주 추수감사
절 전도 초청콘서트에 몇 분이 오셨다. 열 달 만이다. 교회주변 지역에서도
꼭 한번 오라고 초청하고 몇 분이 오기까지 열 달이 걸렸다. 지난 주일예배
때에 두 명의 학습, 세례자가 탄생했다. 역시 열 달 만이다.
경이로운 기다림 법칙 알게 돼
얼마나 더디고 더디게 느껴졌는지. 아이가 탄생하기까지의 열 달은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축복의 기간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이러한 기다림
은 왜 힘들게만 느껴질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여질까. 크고 빠르고 화려
한 세상의 성공 모델이 우리 안에 너무 깊숙이 박혀있어서가 아닐까.
느림
과 작음과 없음의 여정, 이것이 없었다면 참된 목회자도 목회도 되지 못
했을 것이라고 고백하며 성도들을 격려하는 남편이 고맙기만 하다. 우리 모
두가 힘겹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기다림’의 여정을 가
고 있는 것이다.
목회의 속도는 자라는 아이 같고 나무 같다. 이 속도 속에서 수많은 눈물의
물음표 그리고 쉼표가 느낌표로 바뀌어 지는 소중한 발견을 자주 한다. 작
고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할 수도 없다.
주님이 거니시는 갈릴리 호숫가, 나는 지금도 호숫가에서 그 주님을 만난
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고 나는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