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유익 없어도_추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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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유익 없어도

추둘란/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수요일부터 큰비가 오겠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그 탓에 집집마다 감자
를 캐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감자를 적지 않게 심은 유리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자만 거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드넓은 밭에 이
미 캐어둔 마늘과 양파도 저온 창고로 들여야 했습니다. 

장마 앞둔 농촌의 일손 분주해

하루만에 끝날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일손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요즘, 
일꾼들 구하고 때마다 그이들 새참과 밥 차려내느라고 유리네 집안이 정신 
없이 돌아갈 게 뻔했습니다.
유리네를 위해 기도는 쉬지 않고 하면서도 화요일이 다가올수록 제 마음이 
조마조마해졌습니다. 화요일이 성경 공부하는 첫날인데 유리 엄마가 눈앞의 
일을 두고 과연 공부하러 갈 수 있을까 자꾸 걱정이 되었습니다. 
유리 엄마 자신이 이번에는 성경공부를 꼭 하겠노라고 확답을 하였던 참이었
습니다. 아이들이 믿음생활에 관계된 것을 질문할 때 적
절하게 해 줄 말이 
없어 스스로 답답한 적이 많았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 하겠노라 하였습
니다. 참가비 1만원도 선뜻 내었습니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결단은 하였
어도 당장 눈앞의 일들이 유리 엄마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성경공부는 오후 여덟 시에 시작인데, 그 시간이면 어둑어둑하다 하더라도 
일을 마저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게다가 일꾼들을 집집마다 데려다 주고 
저녁밥 차리고 대충 씻기라도 할라치면 여덟 시는커녕 아홉 시도 맞추기 힘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 후에 남편과 함께 유리네로 갔습니다. 어린이집에도 미리 전화를 해서 
민서, 민해를 유리네로 데리고 오십사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남편은 감자밭
으로 곧장 달려가고 저는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소매를 걷어붙이
고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걷어 차곡차곡 개고 
쌀을 씻어 안쳤습니다. 우리집 일도 아닌데, 더군다나 우리집보다 훨씬 넓
은 유리네인데, 이 일 저 일을 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송을 흥얼거리
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내게 유익 없어도 주기만 하는 사랑,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좋아
요.”
다행히 유리네 막내 성훈이가 민서, 민해와 잘 놀아주어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욕실에서 민서, 민해를 씻기는지 깔깔대는 소리까지 즐겁게 
들려왔습니다. 
일곱 시 반, 유리 엄마가 일꾼들을 데려다 주느라 트럭의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녀오면 여덟 시가 넘을 것 같고, 모든 식구가 함께 모여 밥 
먹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 밥상부터 먼저 차렸습니다. 그런데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조금 놀랐습니다. 그렇게 바빠도 반찬이며 찌개, 김치
까지 넉넉하게 마련해놓은 유리 엄마의 부지런함에 새삼 놀랐던 것입니다. 
아이들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끝내자 유리 아빠와 남편이 밭에서 전화를 
해왔습니다. 일이 한참 남았는데 다 끝내고 저녁밥을 먹으려면 지쳐서 안 되
겠다며 먼저 저녁밥부터 먹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새로 밥상을 차려 주어 
두 사람이 한두 술 뜨고 있는데 마침 유리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이게 웬일이랴…?”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한지 집안에 발을 들여놓는 유
리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밥을 물에 말아먹더라도 한 술 뜨라 하였더
니 새참 먹은 게 있어 괜찮다며 교회 갈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지치고 힘들 
터인데도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였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젖은 머리칼로 뛰
어가는 유리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기도했습니다. 
“피곤한 몸이지만 졸지 않게 해 주시고 들을 귀를 열어 주소서.”
유리 아빠와 남편은 자루에 담아놓은 감자를 저온창고로 들이느라고 다시 밭
으로 갔습니다. 마저 설거지를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마을에서 유
리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종분 언니였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고 전화
를 끊었습니다. 끊자마자 전화가 또 울렸습니다. 미정 언니였습니다. 
두 사람의 전화를 받고 나서 무릎을 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일도 일이
지만, 유리 엄마가 교회에 가는 것을 미적거리기라도 했다면 믿지 않는 두 
언니들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유리 엄마를 불러내어 성경공부에 못 나가
게 했을 것 같았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눈을 부라리며 어떤 틈이든지 아주 
작은 틈일지언정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가 넘어 유리 아빠와 남편이 일을 다 끝내고 돌아왔습
니다. 일기예보 덕
분에 이삼 일 걸려 마무리할 일을 하루 저녁에 다 해낸 것입니다. 아니, 그
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마음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시간
을 주시고 힘을 주신 것입니다. 

이삼일 일거리 하루만에 마쳐

다음 날, 유리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살았는지 
알았슈.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되었더믄.” 그러면서 성경공부하며 은혜 
받은 이야기들을 줄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주말에 가
족 동반으로 어죽이나 먹으러 가유.” 느긋한 그 목소리에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평안이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