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 아래서
아름다운 순영씨
추둘란_수필가, 홍동밀알교회
지난 어버이 주간이었습니다. 수요예배 때 늘 하던 것처럼 나는 순영씨 뒷자
리에 앉았습니다. 순영씨가 성경책을 뒤적거리는데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
이 있었습니다. 사진이었습니다. 웬 사진인가 싶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연히 순영씨의 아이들 사진 보게돼
순영씨가 건네준 사진을 본 순간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순영씨의
두 아이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지간에 엄마와 아들딸의 관계로 만난, 그
러면서도 지금은 같이 살 수 없는, 함께 살았다면 어버이날에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라도 달아주었을 틀림없는 순영씨의 두 아이였습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하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두
아이는 정면이 아닌 먼 데를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
는 순영씨 마음에 얼마나 큰 그리움이 번졌을까, 저 어린 것들을 얼마나 껴
안고 만지고 싶을까를 생각하자 내가 겪는
슬픔인 양 가슴 한쪽이 아려왔습
니다.
순영씨는 이혼을 하고 나서 친정에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혼이라고는 하지만 남들처럼 성격 차이나 이런저런 갈등으로 피차간에 합의
를 거쳐 이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 받고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시력에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순영씨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입버
릇처럼합니다. 교회의 한글학교를 다니며 어느 정도 한글도 익혔고 떠듬떠
듬 읽기도 하건만 논리에 맞게 이야기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무슨 일에
든 자신감을 갖지 못합니다.
사실 순영씨의 부족함은 사회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보
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장애를 가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순영씨가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인지, 얼마나 가난한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에 큰 감동이 있습니
다.
농사일을 거들지 않고 사회적인 관계조차 별로 없으니 교회일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크게 화를 낼 것입니다. 교
회 일이란 강요가 없는 법입니다. 아무
리 하는 일 없는 순영씨라 할지라도
자신이 싫다 하면 안 할 수 있습니다. 나 몰라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순영씨는 자신의 일을 놓고 다른 일을 핑계삼은 적이 없습
니다. 누군가 우리 교회에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한결같이 지
키고 있는 일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순영씨를 꼽을 것입니다.
순영씨가 맡고 있는 일은 목사님이 마실 물을 강대상 위에 올려놓는 일입니
다. 언제부터 이 일을 순영씨가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예배에 지
각하거나 빠지는 일이 거의 없는 순영씨이기에 어느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
습니다. 혹여 성경 공부할 때 목사님이 말씀을 많이 하여서 한 잔의 물로는
부족할 때 순영씨는 얼른 물을 다시 채워놓곤 합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도
자기 컵인데도 순영씨한테만은 물의 높이가 보이는가 봅니다.
주일 낮 예배가 끝나면 순영씨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더 많습니다. 식사 준
비를 도우는 것부터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커피를 타 드리는 일 그리고 설거
지, 마른 행주로 그릇의 물기를 닦는 일까지 빠짐없이 다 합니다. 어쩌다 주
일 저녁예배 후에 간식을 먹고서는 설거
지를 못했을 때, 그 이튿날 조용히
와서 부엌을 말끔하게 해 놓는 사람도 순영씨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이런 순영씨의 신실함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실 것입니
다. 사람의 눈에는 지극히 작고 부족한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나 하나님의 눈
에는 그렇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교회가 금요일마다 목
장예배를 드리게 된 후 몇몇 성도들이 은혜로운 꿈을 꾸곤 했는데 그 꿈의
주인공에는 순영씨도 있었습니다. 순영씨가 우리 교회의 구석구석을 깨끗하
게 청소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순영씨를
감찰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목욕 갈 때 함께 가자고 하는 것에 매번 감사하다고 말하는 순영씨, 누군가
간증을 하며 울먹이면 같이 울어주는 순영씨, 헤어질 때 늘 “언니, 수요일
에 봬요”라고 하거나 “언니, 주일에 봬요”라고 말하여서 예배를 상기시
켜 주는 순영씨, 칠순 팔순 되시는 할머니들의 혼잣말 같은 넋두리를 손잡
고 들어주는 순영씨, 예배 시간에 민서나 민해가 의자에 누워 잠들면 자신
의 윗옷을 벗어 덮어주는 순영씨, 작고 여린 어깨를 가졌기에 멀리서
보면
학생 같지만 하나 둘 흰머리가 늘어가는 순영씨….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
운, 하나님의 딸 순영씨….
그 모습, 그대로 너무 아름다운 사람
그런 순영씨의 모습을 보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순영씨 같은 보배를 우
리 교회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라고 바랍니다. 순영씨 천국 가면 맨
발로 뛰어나와 맞아주시고 이 땅에서 함께 살지 못한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하
게 살게 해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