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의 발자취 _민 진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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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발자취

민 진 사모_늘푸른교회

구정 전에 통장이 봉투를 하나 주고 갔다. 열어보니 농수산물 상품권 일만 
원 권이 들어 있었다. 위탁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에 명절이 되면 얼
마씩 나온다. 어디를 나갔다 들어온 남편에게 보여주었고 다음날 어디를 가
는 차안에서 상품권 이야기가 나왔다. 

선물로 받은 농수산물 상품권

남편은 십만 원 권이라 하고 나는 만 원 권이라 하면서 서로 자기가 맞다
고 우겼다. 아이들 같아 뭐하지만 내기를 했다. 이기는 사람에게는 책 한 권
을 사주기로 하면서 “내가 저도 좋으니 십만 원 권이었으면 좋겠네” 했
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내가 맞았다. 남편은 “분명 앞에 0이 
두 개였는데” 하며 웃는다. 
그 후 기독서점에 갈 일이 있던 남편이 김영사에서 나온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란 책을 선물했다. 책이 내용도 있으면서 동화책 같은 분위기여
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조금 싱겁다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주님이 
나를 찾아와 
주셨다는 실감이 팍팍 왔다. 감사하고 감격스러웠고 전도용으
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오심은 분명한데 
‘어떻게’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물론 많은 선교사님들의 헌신으로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와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음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감이 빈약했다. 그것을 알려주기라도 하
는 것처럼 후원하여 주시는 교회에서 ‘목회자 부부들’을 초청해서 위로 잔
치를 열었다. 일정가운데 ‘양화진’에 가게 되었고 많은 선교사님들의 우
리 민족을 위한 헌신과 사랑의 발자취를 더듬게 되었다.
설명해 주시는 목사님의 엄숙함도 있었지만 자꾸 눈물이 나고 목이 멨다. 
이 땅에 처녀의 몸으로 와서 8개월 살다 가신 분, 남편 선교사님이 하늘나라
로 먼저 가시어 뱃속에 있던 아이까지 둘 데리고 본국으로 가셨다가, 작고 
가난한 교회에서 그렇게 많은 선교 헌금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돌아와 
선교하신 미망인 선교사님. 54세의 나이로 선교사로 오신 분, 4대째 이 나라
와 이 민족을 사랑하셨던 가족 기념비도 볼 수 있었다. 
성경번역을 애쓰시던 선교사님께서 성경 번역 모임으로 목포에 가시다 일본 
r
배와 부딪혔고, 소녀가 물에 허우적거리는 것을 구해 냈지만 선교사님은 파
도에 휩쓸려 시신을 찾지 못해 기념비만 있는 것도 있었다. 그것을 안타까워
한 아들 선교사님이 한국에 와서 선교하고 자기는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셨다
고 한다. 자기 묘를 보면 아버지를 기억할 거라면서. 
또한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거나 전염병 같은 것들 때문에 부모보다 먼저 하
늘나라에 가야만 했던 선교사님 아이들 기념비들이 한쪽에 세워져있기도 했
다. 서양 귀신이라는 놀림도, 돌팔매도,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무서운 소문
도 다 이겨낼 수 있었지만 어린 자식의 죽음을 안고, 선교사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내게 복음은 값없이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분들의 수고와 눈물과 
생명으로 전해진 것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그 책에서 ‘어떻게’라는 퍼
즐 조각을 양화진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찾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선교하면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산 것이 사실이다. 
부담감이야 가지고 있지만 내 코가 석자라고 합리화하면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고나 할까? 아이들에게도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고 
지내
고 있었다. 몇 해 전 남편 동기 선교사님이 다녀가기도 했지만 마음의 부담
감만 가졌지 변화는 없었다. 문득 언제쯤에나 선교에 동참할 것이냐? 라는 
주님의 책망이 들리는 것만 같다. 

복음의 빚 갚을 날 오기를

복음의 빚진 나라, 복음에 빚진 우리, 복음에 빚진 나. 그분들의 발자취가 
우리의 발걸음이 되도록 애쓰고 삶의 방식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