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신자라도 영원히 버린 바 될 수 없는 이유”_이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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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신자라도 영원히 버린 바 될 수 없는 이유”

이차식 목사_덕일교회

신자가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후에, 만일 타락하면 
더 이상 의로움이나 거룩함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중생한 신자라도 그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상실할 수 있을 뿐만 아
니라 영원히 버린 바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죄인이 공의롭고 거룩하
신 하나님과 화평하는 유일한 길과 이신칭의의 결과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
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은 해도 실제로는 자신이 죄를 안 지
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신칭의 결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화평을 바라거나 기대하거나 의롭다함을 얻으러 나가
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의 죄를 이미 심
판하셨기 때문에 단번에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
의 체제나 법 아래 있어서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로서
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은혜 안에서 영접하시고 사랑하시며 
마치 궁궐 안에 자녀로서 받아주시는 것처럼 그 안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고 
굳건히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은혜 안에 슬그머니 우리 발로 들어간 것
이 아니요,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보
상과 그 명예와 이름으로 들어간 것이다. 
신자에게 주어진 은혜는 칭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
을 의롭다 하시기로 미리 정해 놓으셨다면 역시 영화에 이르도록 미리 작정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화도 되시는 것이다. 신자는 그의 칭의만을 취하거나 성화나 영화만을 취
할 수가 없다. 칭의, 성화, 영화는 전부이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든지 둘 
중에 하나다. 달리 말하면 칭의를 힘입은 사람은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 이신칭의의 결과는 더 이상 법 아래 있지 않고 이미 하나님과 화평을 누
리는 것이다. 신자는 그 은혜 안에 서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로 이미 예
비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아직도 죄인이요, 본성상 연약하며, 하나님을 닮지 않고 원수 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을 입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그 은혜에 견고
히 서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율
법 아래 있거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고, 긍휼에 풍성하신 그 큰 사랑
하심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의 호의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눅12:7)라고 하
시는 것이다. 
구원과 최종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
이신칭의의 결과를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
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성이나 이해력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감수
성, 됨됨이 등 전 인격에 성령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을 주셨기에 가능하다. 그냥 우리가 믿어서나 어떤 추론과 주장을 펴서 얻은 
결론이 아니라 성령께서 의심하지 않도록 신자의 마음에 하
나님의 사랑을 부
은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
이니”(롬5:5).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구원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친히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고 끝마
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자는 은혜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없다. 만일, 중생
한 신자가 하루는 그리스도인이었다가 그 다음날은 은혜에서 떨어져 그리스도
인이 아닌 비중생자로 전락하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이겠는가? 
중생한 신자도 범죄하여 타락할 수 있으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최종 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신자의 의지나 결심에 있
지 않고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는가? 선한 사람들이
나 경건한 사람들이나 그의 교훈이나 모본을 좇는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 죄인들, 영적 도덕적으로 연약한자들, 전적 무능력자들,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좋아하지도 않고 
하나님
의 법에 복종하려하지 않고 복종할 수도 없는 상태였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
들 예수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다.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로 
말미암아 화목 되었으며 구원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율법을 어느 정도까지 
지켰거나 어느 지점까지 이르렀기에 내어주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생한 
사람이 심각한 죄에 빠졌다고 그를 버리시겠는가? 그럴 수 없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 때문에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혹 성도가 타락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들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새
롭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신다. 성경은 구원의 처음과 끝이 우리에게 달려있
지 않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달려있다고 증언한다. 구원은 앞으로 받
을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받았다고 가르친다. 은혜의 택하심을 입은 자가 그
것을 얻으며(롬11:7) 성부 하나님의 작정하시고 약속하시고 당신의 목적에 따
라 부르시는 일은 후회하심도 없으며 실패될 수도 없으므로 택자들의 수와 의
롭게 된 자들의 수와 영화롭게 된 자들의 수는 모두 같다.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공로와 지금도 중보하시는 사역과 당신의 손

서 빼앗을 자 없는 권세로 보존하신 그 능력 앞에 신자가 범한 죄가 제 아
무리 심각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으로 택하신 성부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
의 공로, 중보, 성령과 말씀으로의 보존하시는 역사를 무가치하게 할 수 없
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도장을 찍는 것처럼 구속
의 날까지 확실히 인을 치시는 성령의 역사는 신자가 타락할지라도 결코 허사
가 되거나 폐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종종 타락하기도 하지만 부
복할 때마다 기이한 힘을 주시며 결코 영원한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