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민주주의_장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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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민주주의

장창수 목사_러시아 선교사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별개라고 이해하는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 
회에서 다수결에 의한 투표 결과가 목회자의 생각과 다를 경우 교회가 분열
될까 걱정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령으로 각 교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어느 하나를 결정하여 투표하도록 했다면 목회자도 이에 굴복하여야 한
다. 성령은 목회자 마음에만 임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제비
뽑기가 있었고 모든 교인들은 자신들이 참여한 제비뽑기를 통해 나타난 결과
를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그대로 승복하고 받아들였다. 이렇게 의인은 믿음
으로 산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오늘날의 목회자가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달리 모든 오
류에서 항상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목회
자도 잘못될 수 있고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는 견제를 받아야 한
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자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는 불경죄를 범한다. 

남방 유다에서 선한 여호사밧 
왕이 통치할 때 아합은 22년 간 북방 이스라엘
을 다스렸다. 그러나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
으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섬기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
벨을 왕비로 맞아 농업 신 바알을 섬겨 숭배했다. 그는 여호와 신앙을 스스
로 버려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왕상 16:29-31).

어느 날 그는 자기 왕궁 근처에 있는 포도원을 소유하여 나물 밭으로 만들고
자 그 주인 나봇에게 포도원을 다른 밭과 교환하거나 팔 것을 제안했다. 이
때 나봇은 당당하게 아합 왕의 제의를 거절했다. 이에 아합은 마음이 답답하
여 침상에 누워 음식을 들지 않았다. 그 이유를 들은 왕비 이세벨은 아합에
게 이렇게 말했다.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
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
께 드리리이다”(왕상 21:7). 그리고 이세벨은 나봇을 인민 재판에 올려 증
인을 세워 거짓 증언케 하고 돌로 쳐죽였다. 그렇게 아합은 값도 치르지 않
고 나봇의 포도원을 얻었다. 이로 인해 아합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왕
상 21:19).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한 나라의 왕인 아합이 평민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거
나 교환하자고 제안했을 때 나봇이 당당하게 왕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이
다. 동양의 문화권에선 이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왕에게 거절하
는 것은 목숨을 건 아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봇에게 무슨 
막강한 힘이나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이 거절
을 들은 한 나라의 주권자인 아합도 어쩌지 못하고 고민하고 침상에 누워 침
식을 거절했다. 동양인의 사고로는 이것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나봇을 왕 앞에 당당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평민의 
거절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왕은 고민해야 했는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각 가문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 이들의 땅은 
인간 왕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며 출애굽의 하나님인 여호와로부터 받은 
기업이며 권리였다. 그러므로 어느 인간도 이 기업과 권리를 강제로 빼앗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도 율법으로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명하셨다. 그리
고 이를 지킬 것을 이스라엘은 ‘아멘’으로 하나님께 답했다(신 19:14; 
27:
17).

이스라엘인인 나봇과 아합은 어릴 때부터 이 율법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러
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민 나봇은 일국의 왕에게 당당히 거절할 수 있었
고 이에 아합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어찌 할 수 없었다. 구약 시대 즉 BC 
800년 전 일이지만 선민 이스라엘에는 일반 백성도 왕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
나는 요구나 일을 하면 당당히 따질 수 있었음이 증명된다. 이 사실은 이스
라엘의 왕이 하나님의 법 위에 존재할 수 없고 일반 백성 이스라엘과 동일하
게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했음을 분명히 말한다. 

위의 사건을 보면서 한 나라의 종교가 그 나라의 정치 발전에 지대한 영향
을 미침을 본다. 종교가 가르치는 바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이 개인 삶과 
그 사회의 사고를 형성하고 이것이 정치 사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
나님 앞에 모든 인간이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 앞에 모든 신자들이 동등하다
는 종교적 신념이 강한 개신교 나라에서 보다 더 잘 민주주의가 발전하거나 
정착하는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상 종교나 그와 비슷한 기독교는 결국 권력자의 탐심을 만족시키
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
인 종교로 이런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
가 잘 발전할 순 없다. 혁명이나 쿠데타 같은 급격한 사회 변동에 의해 서서
히 민주주의는 보급된다. 민주주의 사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불
란서의 혁명은 이 당시 통치자 루이 16세가 왕권 신수설을 주장하며 일반 백
성을 폭정으로 다스렸기 때문에 일어난 유혈 폭동 사태였다. 이 점에서 불란
서 유혈 혁명은 영국의 무혈 혁명과 잘 비교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초법적으로 통치하고 난 후 문제가 되면 통
치 행위였다고 주장하며 면책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
통령은 헌법 위에 절대로 존재하지 못하며 그 목적은 그의 전제 정치와 독
재 정치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나 교
인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설 수 없다. 이를 어긴다면 당연히 목회자도 사퇴
해야 한다. 교회는 부활의 주님이 주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나
님의 통치가 실현되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