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의 극치는 어디까지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chochuseok@hanmail.net >
“우리 자신의 삶을 그린 자화상 같은 친근한 이야기”
|영음사, 2013년|
충성의 극치는 어느 지점일까? 이 충성은 무엇에 집중해서 나타낼 수 있는가? 이 충성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말들을 내게 걸어왔다.
대담을 통해 책으로 나오기까지 5여 년의 인터뷰 세월이 소요되었고, 대담자만도 90여 명이 넘는다. 우리와 아주 가까운 박윤선 목사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와 먼 초대교회사나 중세교회사나 종교개혁사가 아닌 생생한 한국교회사이니 말이다. 이 책의 소중함이 정녕 여기에 있다 하겠다.
정암의 충성된 삶을 증언하고 또 그를 만나고 배운 분들이 받은 영향이 무엇인지도 증언한다. 이를 위해 핵심 질문을 던져 그 증언을 듣는 형식을 띤 대담이다. 그 기초 질문은 다음과 같다.
박윤선 목사님을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박 목사님에게 받은 영향이 무엇입니까? 박 목사님에게 이 시대가 본 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 목사님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박 목사님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박윤선 목사님은 하나님께 충성한다. 그 출발은 먼저 하나님께 붙잡힘으로 시작되었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나이 22세 무렵이셨다. 어느 장로님에 따르면 “좌우간 그 양반은 아침부터 밤까지 하나님, 성경 외에는 없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정암은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말씀 제일주의”를 늘 강조하셨다.
기도로 일관한 삶을 사신 이야기들도 수두룩하다. “내가 아무래도 편지를 다시 써야 할 것 같아. 그 분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 못했는데 마음이 편안치 않다”고 하시면서 편지를 다시 써주신 일도 있다. 갓 구원의 확신을 가진 초신자에게까지 기도 부탁을 하는 겸손도 보이신다.
어느 도서관으로 가던 중 갈대밭이 나오자 기도하고 싶다 하시고 동행하던 이들의 발걸음조차 멈추게 한 기도 일관의 삶. 우리의 개혁주의는 너무 이론적이어서 기도가 약한 게 약점인데 “박 목사님은 그 기도까지 갖추셨기에 굉장히 이상적인 분이고 제가 부러워하는 이유입니다.”
일찍이 주석 집필에 착수하신 정암이 얼마나 집중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다. 아주 가까이 지낸 어느 사모님의 증언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성지 순례 갔다 왔다 하니까 굉장히 부러워 하시면서도 자기는 이 주석 못 쓰고 죽을까 봐 성지 순례를 못 간다고 하셨어요.” “내가 평생에 힘써온 중요한 일은 신학 교육과 성경 주석 저술이었다”고 한 증언 그대로다.
그의 충성은 신학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목사는 성 하나를 지키는 성주와 같다 하시고 “성주가 전사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실천을 몸소 보이셨다. 여든 가까이 되신 연로하신 목사님이 세 시간, 네 시간밖에 안 주무시고 공부를 하셨다니 말이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다 죽는 것도 순교라고 하셨다니……
그 분의 설교도 빼놓을 수 없다. 유창한 설교는 아니지만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설교였고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 같고 토해내는 것 같은” 설교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 분의 설교가 염세적인 어느 고등학생을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내어 긍정적인 삶으로 나아가게도 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박 목사님은 말씀대로 사셨지 않습니까? 그 앞에 할 말이 없죠.” 그 분을 본받자는 뼈 있는 권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분 보고 감탄만 하지 말고 그 분이 사신 발걸음을 같이 떼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평소에 살아계신 분은 너무 올리지 말고 돌아가신 분은 올리자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덕을 봅니다”라고 말한 손봉호 교수님의 바람처럼 이 이야기들이 널리 읽혀 덕을 보는 이들이 많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귀중한 증언들”이라고 지적한 박성은 박사가 쓴 후기의 평이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