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프렐롱 경께 1546. 02. 13.
< 장수민 목사, 칼빈아카데미 원장 >
“무엇에 앞서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있어야”
<내용>
세르베투스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잘못된 사상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내용
영주님께.
제가 떠나는 순간에 받은 영주님의 최근 편지에 대해서 미처 시간이 없어 답장이 늦었습니다. 돌아와서 여유가 생기자마자 영주님께서 (세르베투스에게 글을 써 달라고) 바라시는 대로 편지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최근의 특정인 한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한 번이라도 더 그를 다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시도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혹시라도 주님께서 그를 위해 역사해 주신다면 큰 성과가 나타나 그가 아예 다른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제게 보낸 편지는 매우 교만한 어투였으므로 저는 의도적으로 더 호되게 꾸지람하여 그의 자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다름 무엇에 앞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임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 겸손이라는 것은 주님의 성령으로부터 그에게 전달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시면 현재의 대답이 그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그러면 저는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여전히 지금과 같은 행동 방식을 고수한다면 귀하께서 저에게 그를 어떻게든지 설득해달라고 간청하셔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일 외에도 다른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공연히 더 바빠지지 않도록 깊이 주의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더 쓸모 있는 여러 가지 독서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고 정신을 흩뜨리기 위한 사탄의 유혹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더 좋은 방책이 당장 떠오르지 않으신다면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지금까지 들인 노력만으로도 영주님께서 만족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항상 영주님을 그의 품 안에 보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귀하의 종이자 진실한 친구,
샤를 데스페빌(Charles d’Espeville).
<해설>
비엔느(Vienne) 대주교 고문헌 원본에 이 편지의 주소가 나와 있다. 이 고문헌은 아르티니의 대수도원장인 쟝 프렐롱(Jehan Frellon) 경이 처음으로 출판하였다. 쟝 프렐롱은 리옹의 자유 상인이자 레쒸 드 콜롱뉴(l’Eseu de Coulongne)의 교육자였다.
편지에서 언급된 이 신비스러운 인물은 바로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eal Servetus)이다. 그는 7년 후에 열린 재판에서 치명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세르베투스는 도피니(Dauphiny)의 비엔느(Vienne)에서 외과의사로 있으면서 존 프렐롱(John Frellon)이라는 가명으로 칼빈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기독교 회복(Christianismi restitution)이라는 제목으로 집필 중이던 자신의 작품 일부를 발췌하여 칼빈에게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제네바를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바로 이것이 칼빈이 파렐에게 편지를 쓸 때 자주 인용되던 문단이 나오게 되는 배경이다.
“세르베투스가 최근에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는데, 자신의 정신착란적인 환상으로 가득 찬 두꺼운 책도 함께 동봉하였습니다. 그는 제가 괜찮다면 이쪽으로 오고 싶다고 했지만, 저는 그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그가 왔을 때 나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가 살아서 돌아가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1546년 2월 13일의 같은 날자 편지에서 인용).
이후로 7년 뒤에 얼마나 끔찍한 위험이 발생했는지!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를 비난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머리가 셋 달린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먼저 로마 카롤릭 측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 대기 중에 탈출하였다가, 마치 불나방이 불꽃으로 달려드는 것처럼, 운명적인 매력에 이끌려 제네바를 방문하였다.
그는 1553년 8월 13일 일요일에 취리히로 가는 배 골든 로즈호의 예약 승객이었지만 이 날 마들렝 교회당에서 칼빈의 설교를 듣던 중 사람들에게 들켜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