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_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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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118)_ 딤전 6:13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조병수 교수_합신,신약신학 

정치에서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종교적인 진리를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 진리란 단지 자신의 권좌를 정당화하
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종교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정치를 위해서 그럴 뿐이다. 

정치에서 진리란 단지 수단일 뿐

이런 모습은 실제로 역사상에 자주 발견된다. 예를 들면 그것은 우리 땅을 
강점했던 일제가 기독교를 회유하면서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독일의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가 나치에게 충성을 다짐한 “독일 기독교”(Deutsche 
Christen)에 대하여 가졌던 자세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본디오 빌라도라는 이름을 들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은 막
강한 정치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순전한 마음으로 종교적인 
진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
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거북스럽지 않은 
까닭은 구태여 로마의 역사서까지 들춰보지 않았더라도 간단히 복음서를 통
해서 빌라도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아래서 주후 26년부터 36년까지 유다의 총독으
로 재직했다. 그 때는 유대교 안에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쿰란)파 등
등 다양한 갈래들이 생겨 제각기 목소리를 내던 시기였다. 따라서 유다를 관
할하던 본디오 빌라도는 이런 종파들의 설교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
다. 
특히 본디오 빌라도가 세례자 요한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를 살았다
는 사실은 정치와 종교가 해후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된다. 비록 많은 내용은 아니지만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
도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분명하게 진리를 밝히셨다. 이렇게 하여 빌라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접했던 것이다. 
빌라도가 여태까지 들었던 말 중에 이보다도 더 귀중한 말은 없었다. 하지
만 사람의 몸을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곁에서 생생한 음성으로 

려주는 그 놀라운 진리를 최고의 정치 권력자는 아낌없이 내버렸다.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란 것이 정치적인 목적에 그다지 영양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권력자에게
는 진리라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를 아연하게 만든
다. 보통은 권력에 아부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 않은가. 정도야 어떻든
지 간에 사람들은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세도가에게 빌붙으려고 하는 법이
다. 그런 인물 앞에 설 때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자신이 믿
는 종교적인 진리라도 슬며시 감추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골라낸다.
정치 앞에서 진리는 왜곡되기 싶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이런 일반
적인 모습과 현저하게 달랐다. 그분은 당시 최고 실세인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 선한 고백을 당당하게 증언하셨다. 그것은 정치가 진리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정치보다 앞선다는 것을 밝힌 순간이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 향하여 제출한 것이 다름 아
닌 선한 고백이었다고 요약한다(13절). 예수 그
리스도의 선한 고백은 땅의 
세계보다 하늘의 세계가 상위한다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땅의 정치는 
하늘의 진리를 수용할 때 생명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진리를 수용한 정치만
이 더러운 흙탕물에서 벗어나 맑고 잔잔한 호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
다. 
어찌 세상의 정치에서뿐이겠는가. 세상의 정치에서도 진리가 선도적인 역할
을 해야 한다면, 교회의 정치에서는 더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지역교회에
서 담임목사가 진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신자들을 향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
두르고, 몸집이 큰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향해 진리에서 벗어난 횡포를 부리
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을 전혀 알지 못하는 행위이다. 

진리가 정치 선도할 때 횡포 없어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도 진리를 말하는 정신으로, 그리고 진리로 정치
를 선도하는 정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