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덕목록_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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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117)_ 딤전 6:11C

미덕목록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윤리에서 실패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종교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어
떤 종교든지 도덕의 실패는 바로 그 종교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런 의미에서 종교의 생명력은 윤리의 강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윤리 떠난 종교 있을 수 없어

종교는 종교다운 고상함과 우아함을 보이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그 종교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반드시 윤리를 동반해
야 하는 법이다. 종교에서 윤리가 뜻하는 바는 장식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말
이다. 이렇게 볼 때 종교적 윤리라는 말이나 윤리적 종교라는 말은 별거 아
니라는 듯이 절대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수평적인 차원에서 보면 초기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방식으
로 이해할 수 있다. 윤리를 무시한 기독교라는 것은 처음부터 지구상에 존재
하지 않았다. 윤리는 초기 기독교에 내재한 본질의 일면이었
다. 우리는 이 
사실을 초기 기독교가 윤리를 무한적으로 강조했다는 것에서 어렵지 않게 규
명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윤리만을 유일한 조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윤리를 소유하고 윤리를 교육한 것이 초기 기독교의 성공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윤리 강조는 신약성경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윤리목록들을 볼 
때 어렵지 않게 입증된다. 신약성경의 윤리목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자들이 따라야 할 덕목들을 열거하는 미덕목록이며, 둘째는 신자들이 피해
야 할 악행들을 열거하는 악덕목록이다. 
신약성경에 분포되어 있는 윤리목록은 초기 기독교가 윤리를 얼마나 중시했
는지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렇게 명확한 윤리목록들을 제
시받음으로써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쓸데없이 힘과 시간을 소모하는 논쟁을 
벌이지 않고 세상에서 바로 윤리적인 삶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미덕목록을 한 가지 제시하였다. “의와 경건과 믿
음과 사랑과 인내
와 온유.” 이런 덕목은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 사람과 질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다. 
세상 사람은 의롭지 않고, 경건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예
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며, 성령의 열매인 인내나 온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세상에서 신자는 미덕목록을 따름으로써 신자의 품위를 증명하고 세상
과의 차별을 증명한다. 그러나 신자가 이런 덕목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세
상 사람과의 차별화 때문만은 아니다. 
신자가 이런 덕목을 따르는 것은 자신이 고백하는 신앙과 자신이 신앙하는 
신학은 반드시 일상생활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학은 윤
리의 나무이며, 윤리는 신학의 열매이다. 초기 기독교의 신자들에게는 신학
과 윤리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신학은 신학대로 따로 놀고, 윤리는 윤리
대로 따로 노는 그런 기독교는 아예 없었다. 
윤리는 신학에 뿌리를 내리고, 신학은 윤리로 꽃피는 것, 그것이 초기 기독
교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윤리는 철저하게 신학적인 윤
리였고, 초대교회의 신학은 철저하게 윤리적인 신
학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능력은 신학과 윤리의 동반성에서 표출된 것이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에서 최악의 취약점은 윤리를 상실했다는 데 있다. 목회
자도 성도도, 교회도 교회와 관련된 기관들도 그렇다. 부끄럽게도 기독교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 어디 한 곳에서도 고귀한 도덕성 때문에 칭찬을 받는 곳
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에게는 신학도 없고, 윤리도 없다. 
지금 기독교는 스스로 펜을 꺼내들고, 표준으로 삼아야 할 윤리목록을 작성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리고 윤리목록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
면서 과시와 사치와 오만과 욕심과 아집, 이런 것들을 내버려야 할 때가 아
닌가? 

사치, 오만, 욕심, 아집 버려야

우리는 윤리적 신학과 신학적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초기 기독교의 성공은 
우리에게 도외시할 수 없이 중요한 교훈이다. 현대의 기독교가 윤리에서 실
패한다면, 그것은 머지않아 기독교 그 자체의 실패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