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4:10 끊임없이 돌아가야 할 대상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죽음 앞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
지난 주 사랑하는 벗의 아들이 죽었다. 21년하고 몇 달을 살고… 친구는 그
슬픈 소식을 안고 아들의 시신이 있는 영국으로 떠나던 날 아침 일찍 나에
게 전화를 걸어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전화를 했어”, 그
리고 한 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더니 피를 토하듯 한 마디를 더했
다. “세윤이가 죽었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뭐가 어쨌다고, 누구한테 무
슨 일이 일어났다고… 머리 속에서는 콩 볶듯이 여러 외침이 엇갈리며 충돌
했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침묵도 반응일까.
고통 가운데서 며칠이 지나 그가 기도하는 친구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구
절은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나를 또 다시 흔들어 놓았다. “평생 눈물 속에
서 두고두고 풀어야 할 한 가지 숙제를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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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던지는 질문
죽음 앞에서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는 것일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죽음의
공포를 이길 힘이 아니다. 인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죽음이
두렵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슬픔을 극복할 힘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죽는 것이야 무섭지 않다. 하지만 낳
고 기른 자식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고, 말을 나눌 수
없고, 살을 비빌 수 없게 되었다는 그 슬픔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
까?
그 옹알거리며 손짓발짓하던 아들의 모습을, 무릎이 깨져 방울처럼 눈물을
떨구던 아들의 모습을, 받아쓰기에 별 다섯 개를 맞고 입을 다물지 못하던
아들의 모습을, 밤샘공부로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던 아들의 모습을, 아르바
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을 이기지 못해 코를 골던 아들의 모습을 내 친구
는 머리 속에서 지워버릴 힘이 있는 것일까?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10절)이다. 살
아계신 하나님, 그 분만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신다. 죽음이 두려움뿐 아니
라 슬픔이
라는 무기로 우리를 장악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
님에게서만 평안을 얻는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고백은 백 번 옳다. “당신
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으니,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
할 때까지는 평안하지 않나이다”(Tu nos fecisti ad Te, et cor nostrum
inquietum est, donec requiescat in Te).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
의 슬픔 앞에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할 대상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만
죽어야할 인간은 소망을 얻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는 복음을 전하는 길을 쉼 없이 달려갔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
음을 위하여 숨을 다하고 힘을 다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사도 바울이 보여
준 모습은 수고와 진력이었는데, 그 원동력은 오직 한 가지였다. “우리 소
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하나님만이 그 해답일 뿐
아들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는 친구에게 못할 말을 썼다.
“그저 주님의 은총이 너와 네 가족에게 임하기를 빌 뿐이다. 말문이 막히
고 가슴을 에우는 이 슬픈 소식 앞에서 너에게 무슨 위
로를 하겠니. 하나님
께서 당신의 큰 뜻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더 큰 어리석
음을 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 아들은 내 아들과 같아. 그래서 마
음이 아프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아픔을 네 아픔에 견주겠
니. 너와 네 가족의 눈물에 내 눈물을 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와 네
가족은 세윤이를 하나님께 먼저 보내놓고 얼마나 오랫동안 슬퍼할까. 그 아
이의 싱겁게 웃는 모습이 눈에 아리게 떠오른다. 그래, 눈물을 참지 말아
라. 우리는 앞서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비로소 독생자를 주
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않겠니.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
서 너와 네 가족에게 정말 육체를 가지고는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지독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멀리서 외로이 슬픔을 견디어야 할 너와 함께 있지 못
하는 것이 무척 죄스럽다. 용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