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16)-이제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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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알겠다

(딤전 1:17)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물 속은 끈적거렸다. 허우적거리는 몸에 젖은 옷이 달라붙어 맘대로 손발
을 놀릴 수가 없었다. 가슴에 들어있던 마지막 산소까지 타버리고 몇 번이나 
흙탕물을 들이키며 죽음이란 이렇게 오는 것이로구나 느끼는 최후의 의식 앞
에서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뱃속에 가득하
던 더러운 물을 토해내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
러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더 분명하게 의식이 돌아왔을 때 좌우에 위
엄스러운 의관을 갖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고 앞에는 영광의 왕께서 보좌에 
앉아있고 그 곁에는 머리가 물에 젖은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왕자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와서 부드럽게 일러주었다. “그대
를 살려내기 위해 왕자님께서 몸소 깊은 죽음의 물 속으로 뛰어들으셨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위 끊어진 활처럼 튀어 땅에 엎드려 왕께 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가 나를 물 속에서 끌어냈더라도 그 주인에게 절하지 않을 수 없을텐데, 
노예가 나를 물 속에서 건져냈더라도 그 주인에게 절하지 않을 수 없을텐
데… 왕자께서 친히 물 속에 뛰어들어 나를 살려내셨다니 어찌 왕께 절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하여 말하던 사도 바울이 갑자기 하나님께 
찬송을 쏟아내고 있는 까닭이다.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이며 죄인 중에 괴
수인 사도 바울은 자신을 살려내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은혜 앞에서 하나님께 찬송을 토해내고 있
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사도 바울은 사망의 깊은 물 속에
서 구원받고 문득 눈을 들어보니 왕이신 하나님께서 앞에 계신 것이 보였던 
것이다. 사람의 몸을 가진 왕에게도 구원의 감격을 표현한다면 하물며 어찌 
영원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께 구원의 감격을 토로하지 않으랴. 시간적으로는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시며, 질적으로는 썩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며, 형태에 있
어서 보이
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며, 수효에 있어서 단일하신 분이시다. 

사도 바울은 몸이 녹아 내리는 것을 느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이며 죄
인 중의 괴수인 사람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가 가
장 비참한 존재를 상대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낮은 인격이 가장 높은 인격 
앞에 서 있는 것이며, 최대의 마이너스가 최대의 플러스 앞에 서있는 것이
다. 

제일 차가운 얼음이라도 제일 뜨거운 불 앞에서는 순식간에 녹아 내릴 수밖
에 없듯이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인간은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
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찬송밖에 없다. 찬송은 강제도 아
니며 억지도 아니다. 찬송은 단순히 구원의 감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엄
밀하게 말해서 구원의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엄에 관한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구원의 감격을 넘어 하나님의 존엄에 관한 인식이 있기까지는 어떤 
것도 찬송이 될 수가 없다. 존엄하신 하나님이 구원받은 인간을 상대하고 있
다는 인식이 찬송의 시작이다. 그래서 찬송은 소리
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찬송은 소리 이전의 것이다. 찬송은 발성보다도 앞서는 것이며 노래보다도 앞
서는 것이다. 찬송은 모든 방면에서 음악의 차원보다 선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전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찬송은 어떤 방식으
로 표현되든지 간에 이미 찬송이 아니다. 찬송은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
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 나를 상대하고 있다는 의식에
서 출발하며 진행되며 종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우리를 상대하고 있는
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제는 알겠다. 정말 이제야 알겠다. 사망의 물 속에서 끌려나와 정신을 차
리고 보니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시다.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것만
도 찬송해야 할 터인데, 앞으로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상대해주시는 가운데 살
게되었으니 얼마나 더 찬송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