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신학(Narrative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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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교수의 현대신학해설 

이야기 신학(Narrative Theology)

‘이야기 신학’ 혹은 ‘설화 신학’이라고도 하는 이 신학은 1970년대에 출현한 
상대적으로 최근에 생겨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학은 주로 성경 해석
학과 관련하여 발전된 신학으로 이 신학 역시 자유주의 신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 신학 역시 다른 현대 신학들과 같이 신학의 가능성
(물론 이런 가능성은 정통 신학을 떠난 데서 오는 고민이다)을 나름대로 공급
하기 위한 신학적 사조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이 신학의 대표적 주자들로서
는 가브리엘 팩커(Gabriel Fackre), 마이클 노박(Michael Novak), 한스 프라
이(Hans Frei), 제임스 맥클렌돈(James McClendon) 등이 있다. 

이들은 먼저 진리가 어떤 명제적 혹은 논리적 체계로 표현될 수 있다는 기존
의 신학 전통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성경은 어떤 철학적 혹은 신학적 체계
가 아니라 구속의 역사요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 자체를 중요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들
이 주장하는 바는 기존의 신학에서 하듯이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의 뒷 배경
이나 사건들에 관한 해석을 독자가 나름대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
어진 텍스트의 이야기가 이미 해석이 된 이야기요 독자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텍스트를 갖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텍스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텍스트, 즉 성경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실재의 모습이
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신학자들은 성경 이야기 구조가 실재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사건’과 ‘해석’의 구분을 거부한다. 사건이 곧 해
석이요, 해석이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이야기체로 기록된
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야기만 읽고 더 이상 신학적 생각
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와 신학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학은 
이야기를 뒷받침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신학은 변치 
않는 진리의 체계적 설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 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상은 다름 아니 신정통주
의인 것이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과 ‘성육신된 그리스도’와 ‘설
교’를 통해 전달된다고 주장하였을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이 세 가지가 하
나님 말씀 자체라기 보다는 그 계시가 실존적으로 혹은 순간적 사건으로 역사
성을 띠고 위 세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말하였다. 이야기 신
학에서도 바로 하나님의 계시란 성경의 이야기체로 나타나는 그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 신학자들은 바르트와는 달리 주관주의에서 벗어
나 어떤 공동체적 의미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어떤 주관주의를 벗어 
날 수 없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야기 신학자들은 성경의 
이야기체를 사람의 해석이 가입되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열린 텍스트라
고 가정하지만, 이러한 가정을 하기에는 적어도 자신들의 주관성과 해석학적 
전제가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요, 또한 그들 역시 성경의 의미 혹은 사건을 
그들의 해석 체계에 이미 집어 놓았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 신학 역시 인간의 자율성을 나타내는 신학이라

n고 비판할 수 있다. 즉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란 다름 아닌 인간 자율성의 
표현인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을 그야 말로 자율적으로 남게 하기 위해 이야
기가 순수하게 열려야 하며 그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을 통제하려는 어떤 교리적, 신학적 진리 체계를 단절
시키기 위해서 이야기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성경 안에 이야기
체가 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야기체로 기록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또
한 그 이야기에 깔린 플롯(plot)을 찾아 성경을 해석할 필요도 있다. 또한 정
체되고 단절된 교리적 해석의 위험성을 이야기 신학은 잘 지적하고 있다. 그
러나 우리가 분명히 지적해야 하는 것은 성경은 이야기체로만 되어 있지 않다
는 것이다. 성경에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처럼 교리적 기록도 있고 히브리서
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건을 해석하는 기록이 있고 법도 
있고 시와 잠언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성경의 장르(Genre)에 있어서 알아야 할 한가지 사실은 그 뒤
에 분명한 ‘무엇’이 발생되었다는 것이다. 즉 분명한 객관적 진리가 그 장
르 
뒤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체를 대
한다고 해도 성경 기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객관적 
진리가 바로 성경의 신적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지 단지 각 독자가 열
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대함으로 진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열린 마음
이 순수하게 열린 마음일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열어야 하는 대상은 우리가 
정해 놓은 해석학적 체계도 아니요 철학적 체계도 아니다. 그 대상은 바로 하
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인 것이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해석되고 인간의 언어
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