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정승원 교수
2) 바르트의 계시관 및 신관
먼저 지난호에 언급한 바르트의 계시관에 대해 다시 요약 설명하자면 그
의 ‘계시’는 한마디로 그의 ‘초월적 하나님’이 어떤 인간적인 요소(언어, 시
간적 역사를 포함하여)를 통하지 않고 역사속에 바로 나타나는 방편인 것이
다.
그래서 바르트는 계시를 “위에서부터 바로 내려지는”(Senkrecht von Oben)것
으로 설명한다. 또한 그래서 계시를 하나님의 ‘전적’ 나타남’이라고 주장하
는 것이다. 전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인간의 언어나 사상같은 매개체
가 중간에 개입되기 때문인 것이다. 자신안에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자
신의 존재로부터 따로 인간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전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시 사건과 동일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의 권위와 그의 계시의 권위가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와 하나님의 존재가 동일시 되는 것이다. 즉 계
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방편인 것이다.
또 지적할 것은 바르트의 계시는 실존적 의미에서 받는 자의 믿음의 반응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 주관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바르트는
슐라이어막허나 리츨의 신학을 주관적이라 혹은 인간적이라 비판했지만 이러
한 비판이 바르트 자신에게도 해당된다고 하겠다. 어쩌면 그에 눈에는 정통주
의자들이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것을 해석하고 논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어떤 인간 연구의 객체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았는
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능력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
을 통하여 그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신 능력은 왜 인정할 수 없
겠는가? 하나님 자신외에 다른 무엇으로 될 수도 있는 자유가 그의 속성이라
면, 왜 시간속에서 인간 언어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실 자유는 없는 것일까?
아무튼 우리는 이러한 바르트의 계시관을 알고나면 그의 계시관은 정통 신학
이 아님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혹 성경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
씀이라는 것을 받아들이
기 힘든 사람에게는 이러한 바르트의 계시관이 그럴
듯 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의 계시관은 그 계시 개념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존재까지 연결되는 개념이다. 우리가 믿는 인격적이시며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이냐 아니면 바르트의 전적 타자(wholly other)로서 추상적 개념적 하
나님이냐의 선택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트의 신관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바르트는 하나님을 ‘전적
타자,’ ‘감추어진 자,’ ‘자유’ 등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그의 ‘자
유’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자유는 하나님의 근본적 성품이라는 것이다. 하나
님이 자유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아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자유도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감추어진 하나님이 전적으로 나
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을 “자유를 사랑하는 자”라
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의 자유는 그의 감추어짐을 말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
의 계시, 구원, 은혜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감추임과 계시가 동시에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
님의 자유란 그 자신외의 무엇이 될 자유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재하실 자유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자유의 연
속이라고 말한다. 즉 초월적 하나님이 동시에 내재적이라고 해서 불변을 상실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의 속성인 자유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의 영원성
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향한 자유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나중
에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난호에 살펴보았듯이 바르트가 하나님을 그의 계시와 동일시 할 때는 어떤
간접적 동일을 의미한다. 즉 계시가 역사적 형태를 취할 수 있어도, 역사적
인 어떠한 것이 계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어떤 면에서
는 계시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계시와 동일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계시의 간접성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 계시속에서도 감추어지신 분
이라는 것이다. 즉 계시안에서도 자유하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간접
성 개념은 변증법적 방법으로 하나님이 동시에 감추어지고 동시에 나타난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으로 하나님을 계시와 동
일시 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도대체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
이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는 매개체(특별 계시
와 일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면 우리가 계시를 받을 순간(계시 사
건) 그 계시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계시를 받는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 순간에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
는 소리인가? 아니면 계시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보편적
실재(realty)로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범신론적으로) 그 무엇인가? 실
로 ‘간접적 동일’이라는 개념은 단지 변증법적 추론일 뿐 사실이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오히려 바르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감추임 혹
은 초월성만을 강조해서 하나님을 헬라 철학에서 말하는 “알 수 없는 신”으
로 정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굳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말하고 싶으면 우리가 믿는 것처럼 인격적 하나님이 그의 초월적 능력으로 인
간(역사적 매개체)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고 시간적 역사속에 나타나셨다
고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기야 하나님이 자신의 초월성을 끝까지
잃지 않고 역사속에 나타나는 방법이 변증법적 방법말고 없는 것으로 “믿는”
바르트에게는 우리가 가진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