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예배찬송으로서 시편찬송이 주는 유익_최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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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찬송으로서 시편찬송이 주는 유익

< 최찬영 목사, 영국 다윗의교회 >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란 교회가 시편찬송으로 예배하는 것”

 

우리 교회가 예배 찬송으로 제네바 시편 찬송을 부른지 3년이 되었다. 사실 시편 찬송가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3년 전인 2011년 봄이었다.

같은 해 5월 22일부터 예배 찬송으로 정하고 시편 1편을 시작으로 해서 매주 한 편씩 부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 4월 13일 주일에는 마지막 시편 150편을 불렀다.

그동안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느낀 점을 적고자 한다.

 

1. 감사

제일 먼저 시편 찬송을 부르게 하시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008년 교회를 개척하여 자립도 하지 못한 조그마한 교회의 사정과 형편상으로 시편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2011년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다. 지극히 적은 소수의 성도들이 기존의 찬송가만 알고 시편 찬송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시편 찬송을 부르겠다고 해서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시편 찬송가를 보내주신 파서교회의 원태은 목사(현재 필리핀에서 사역)와 성도들께 감사를 드린다. 2011년 당시 런던 다윗의 교회에서는 시편 찬송가를 마련할 재정이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파서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시편 찬송가를 보내 주시기 위해 성도들이 헌금을 하여 30권을 사서 보내 주셨다.

또한 불평불만 없이 따라와 주면서 시편 찬송을 부른 다윗의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2.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처음 시편 찬송가를 부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찬송가 멜로디는 익숙한데 반해 시편 찬송가는 생소하고 부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 어려웠던 이유는 교회에 반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시편 찬송가 음원을 다운로드 받아 매 주일 그 소리를 듣고 따라 불러야 했다.

이러한 교회 사정상 시편 찬송가만 부르지 않고 기존 찬송가와 병행하면서 불렀다. 현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금도 반주자 없이 시편 찬송가 음원을 듣고 따라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시편 1편부터 부르기 시작한 지 1년이 넘도록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편 찬송은 밋밋하고 감정이 들지 않아 감동이 별로 없다. 그래서 포기하고 기존의 찬송가만을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1년이 넘도록 시편 찬송을 불렀는데 이제 와서 포기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특히 성도들이 시편 150편 끝까지 다 불러보자고 했기 때문에 그만 둘 수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시편 찬송을 부른지 2년이 되면서부터 조그마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어느 정도 귀에 익고 따라 부르기가 쉬워졌다. 성도들도 처음보다는 한결 부담이 없어진 것이 엿보였다. 성도들이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올해 2014년이 되면서 기존의 찬송가를 부를 때 받는 은혜가 이제는 시편 찬송을 부를 때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기존의 찬송가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시편 찬송만을 부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그 웅장함과 영광스러움을 보았고, 참으로 이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찬송을 통해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존의 찬송가를 부르면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시편 찬송가를 부르면서 깨달을 때 그 은혜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인간의 마음이 감정을 통하여 감동을 받으면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하기에 기존의 찬송가를 부르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시편 찬송은 기존의 찬송가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시편 찬송은 하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꿀보다 더 단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편 찬송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웅장한지를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왜 시편 찬송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

 

3. 바라는 소망

앞으로 우리 교회가 바라는 소망은 예배 가운데 온전한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시편만으로 찬송을 하는 그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 준비란 반주자가 오기를 기도하는 것과 아니면 반주자나 음이 없어도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도록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바라기는 모든 교회들이 시편 찬송을 불렀으면 한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3년만 참고 부른다면 왜 진작 시편 찬송을 부르지 않았는가에 후회하는 마음이 들것이다.

예배의 회복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회복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지만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란 예배 가운데 교회가 시편 찬송으로 예배하는 것이라 믿는다.

시편 찬송은 하늘의 찬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