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영적 부흥이 필요한 때
< 도지원 목사, 예수비전교회 >
“진리 안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즐거워하는 영적 부흥 필요해”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지만, 진리와 함께 그 아름다움도 말한다. 이것이 성경에 시편과 같은 책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시편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논문이나 설교라기보다 진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한 시이다. 그래서 그것은, C. S. 루이스의 말대로 “서정시에 맞는 형식과 파격과 과장을 담고 있으며, 논리적인 연관성 보다 정서적 연관성을 따르고 있다.”
또한 사도들이 편지를 쓸 때 종종 파격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거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아멘이라고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예를 들면, 로마서 1장 25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와 함께 성경에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맛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묘사도 풍부하게 나타난다.
삭개오는 그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즐거워하며 영접했다(눅 19:6).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마 13:44).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선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면서 집에 들어가 아기께 경배했다(마 2:9-11).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그들 속에서 마음이 뜨거움을 느꼈다(눅 24:32). 히스기야 왕 때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즐거워하며 7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다(대하 30:21).
사도들은 공회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고 풀려날 때 오히려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행 5:41).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했다(단 6:10). 이스라엘 자손은 에스라가 낭독해준 율법책의 말씀을 깨달았을 때 큰 즐거움을 맛보았다(느 8:12).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진리의 아름다움을 맛볼 때 느끼는 감정은 중요하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참된 종교는 주된 부분이 감정들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경의 많은 명령은 행하라고만 하지 않고 느끼라고도 한다. 이러한 명령들 중에는 기쁨, 감사, 평강, 열심, 소망, 경외, 불쌍히 여김, 겸손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진리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감상하고 즐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교리를 아는 것은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기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러기에 존 파이퍼는 “교리가 보이면 영광이 보존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현 시대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다.
“현대 복음주의의 교리적 공백 상태가 야기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림과 더불어 참되게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맛보는 것도 잃어버립니다. 곧 우리가 깨어나 보니 복음주의적 왕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것들이 공허할 뿐입니다. 그리고 최악의 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 이유 즉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것뿐 아니라 진리의 아름다움을 즐거워하는 영적 부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환난 속에서도 참고, 희생하고, 남을 돕고,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영광을 보게 하실 뿐 아니라 즐거워하게 하실 것을 기대하자.
성령님이 회심, 예배, 성경, 기도, 교제, 고난, 순종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이러한 영적 부흥을 경험하게 하실 것을 간절히 바라자. 지금은 영적 부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