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함께 영광을 바라보자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원래 인간은 최상의 총애를 받는 피조물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고 특별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독특한 위엄을 지닌 피조물로서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보배와 같은 존재이다. 나아가 인간은 모든 창조 세계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둠으로써 만물이 그 발아래 복종하는 존재, 즉 경쟁자가 없는 통치권을 부여받은 피조물이었다(창 1:26).
그러나 이런 묘사는 지금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과는 다르다. 오히려 지금 죄 아래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총애를 경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며 자신의 위엄을 망각하고 죄로 인해 통치권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그리스도는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그리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통해서 인간이 되어질 모습을 보게 된다.
신자들은 ‘예수를 보면서’ 그분이 신자들의 선구자로 오셨음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인성을 모든 고난과 함께 짊어지셨다. 인간이 되심으로서 그리스도는 신자의 고뇌의 영역에 직접 들어오셨다. 인성을 입으셨을 때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삶과 죽음의 모든 위험한 곤경 앞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스도는 환난과 역경으로부터 보호받지 않으셨다. 신자들이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어려운 현실에 잠겨 허우적거릴 때 그리스도는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하셨다.
인간은 죽음의 위협 아래 일생을 살아간다. 예수님 역시 죽음을 맛보셨고 죽음의 육체적 과정을 통과하셨으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가장 비참한 상태까지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형제들과 같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그 무서운 경험을 통과하셔야 했다. 신자들의 선구자로서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신자들보다 앞서 지나가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비켜가야 할 이유가 없다. 아직도 순탄하고 평탄한 길로만 가겠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