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아포라(adiaphora) 논쟁_송영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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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아포라(adiaphora) 논쟁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인 성경은 모든 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때문
에 어떤 행위에 대해서 “무엇이 잘못인가?”라는 논쟁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것
을 가리켜 “아디아포라 논쟁”이라고 한다. 

“아디아포라”란 단어는 희랍어 “아디아폴론”의 복수형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
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에서 이 용어는 “성경에서 명하지도, 
금하지도 않은 행동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즉 “아디아포라”란 본질적으
로 선악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성도 각 개인이 자신의 판단과 양심의 자유
에 따라 행하는 문제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안식일 날 예수님께서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에 대하여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을 들 수 있다(막 3:1-6). 안식일 날 병든 사람
을 고치는 행위가 과
연 율법에 비추어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를 가리켜 “아디
아포라 논쟁”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심으로써 문제의 해답
을 제시하셨다. 물론 이 사건의 내면에는 예수님이 자신을 신적 존재임을 계
시하신 주요한 의미가 있지만 바리새인들과의 “아디아포라 논쟁”을 통해 율법
의 의식을 준수하는 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절박한 인간의 요구에 무관심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 것을 보여주셨다.

교회의 법령에서도 금지되어 있지 않은 행동들이 많이 있다. 이런 행동들은 
개인의 자유 의사에 따라 결정되도록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
역 속에서는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 바울 사도는 “아디아포라 논쟁”을 다루
는 로마서 14장에서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고 권하면서 그 원칙으로 “사랑”을 제시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은 기독교인
의 자유를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고 조건인 셈이다.

우리들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아디아포라 논쟁”들에 부딪힐 수 있다. 이처
럼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해답은 바로 “사랑”이다. 
성경이나 교회 법에서 명백하게 “죄”라고 규명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생명
을 걸고 지켜야 할 절대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 얼굴부터 붉히고 비난할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은 최후에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롬 14:10-12)이다. 
우리는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기보다는 강자가 약자를 “사랑”으로 감싸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를 행사하는 성도와 교회의 바른 
생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