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그 용어 사용의 ‘엄밀한 의미’ – _문종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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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 그 용어 사용의 ‘엄밀한 의미’ – 

문종철 목사(수원노회)

1. 지상의 ‘교회’는 언제나 ‘개혁’이라는 말을 자신 속에 두고 있음 
교회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곧 교회의 전적 타락
을 말합니다. 이 시점으로부터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구체적 내용과 방편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나타납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으로 인하여 역사적 교회는 비로소 소망
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말 안에는 늘 ‘개혁’이라는 말을 덧붙이
지 않더라도 그 내용이 절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지상의 ‘교회’ 상태
요 수준입니다. 
성경에 ‘개혁교회’라는 용어가 문자로서 적혀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교
회는 세상과 이단 사상과 구별된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
15)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개혁 이후에 신앙고백과 함께 시작한 ‘개혁교회’가 있기 전부
터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는 거룩하다는 긍정적 
자부심과 함께 실제적 연약성을 동반한 존재로서 긍정적 상태와 부정적 수준
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개혁’ 이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덧붙이지 않더라
도 그 수준과 상태상 ‘개혁’이라는 말을 스스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 이
후로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의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로서의 사명과 교
회 됨의 모든 것을 말씀 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완성이 있기까지 개혁
될 것을 요구받는 것입니다. 

2. ‘개혁교회’ 그 엄밀한 의미에 대하여 
그러므로 ‘개혁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며 교회로 모인 무리들이 자신들이 속
한 교회를 ‘개혁교회’ 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 ‘개혁교회’라는 
이름이 스스로 갖고 있고 인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개혁교회’라는 용어는 아담 이후 주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께서 인정하
시는 교회를 ‘개혁교회’라 함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
정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한 교회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과 사역으로 인한 새 언약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여기 새 언약 아래에 있는 교회는 사실상 지상에서의 명함의 그 어떤 것 때문
에 인정되는 교회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장로교회’나 현재 세계 여러 
곳에 있는 종교 개혁 이후에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신
조를 중심적 신앙고백으로 하여 모인 ‘개혁교회’나, 중요한 것은 ‘개혁교
회’라는 말을 자신의 교회 앞에 명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한 순간에 있었던 
용어의 시작과 그 정치적 형태에 있는 권한으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교회는 성경이 요구하는 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라는 원리적인 내용에 근거해서 인정되며 그 용
어의 사용이 허락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그저 넓은 의미로 사용하자
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이 교회에 대하여 증거 하는 교회의 수
준과 신학적 입장에 확실하게 근거한, 오히려 좁고 분명한 길로서의 의미입니
다. 그러므로 이는 실로 성경적 증거 앞에 ‘엄밀하다’ 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
다. 
엄밀한 의미(정확한 의미)에서 ‘개혁교회’라는 용어는 ‘장로교회’든 ‘개혁교
회’든 현재 자신이 속한 곳의 이름에 메이거나 특정화되지 않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계시’에 충실한 교회는 소위 ‘개혁교회’라 이름
하는 자들이 믿고 따르는 신앙고백을 강조하고 그 정치형태를 그대로 취하지 
않더라도 그 신앙고백과 정치 형태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신앙고백들의 내용을 성경적으로 확고히 하고 검증하는 교회들입니다. 
여기서 신앙고백(벨직, 하이델베르그, 도르트, 웨스트민스터 등)의 내용을 검
증하고 확고히 한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인데, 이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신실한 교회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의 내용과 권위를 성경과 동일
한 것으로 여긴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들(웨스트민스터, 
벨직, 하이델베르그, 도르트)은 성경의 내용을 뼈대있게 정리한 훌륭한 내용
이라는 표현 이외에 성경의 온전함을 빠짐 
없이 올바르게 다 증거 하였다 라
고 자신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훌륭한 ‘신앙고백’들과 ‘정치 형태’는 언제까지나 성경의 내
용을 통해서 앞으로의 역사 속에서 주의 재림 때까지 검증 받는 내용들로 서 
있어야 함을 그 존재의 의미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교
회’나 ‘개혁교회’ 나 중요한 사실은 자신들의 신앙고백들과 정치적인 특성들
을 제대로 살려서 제대로 누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더 이상 정치 형태
나 특성들로 인한 – 역사의 한 시점에서 나온 소속을 의미하는 – 용어에 집착
하여 본질을 흐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각 교회들이 갖는 정치적인 형태와 신앙고백의 특징에 의해
서 불려지는 이름이 비록 있더라도 그 특징들 또한 성경의 내용을 온전하게 
다 증거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특성들로 
인한 이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교회의 서나감에 사활을 걸 만한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특성들을 제대로 살리고, 그 특성 위에 언제나 성경
의 원리를 근거한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 ‘장로교회’든 ‘개혁교회’든 그 신앙고백과 정치적 내용과 수준이 언제나 성경
을 통해서 검증되어 다시 개혁되고, 바르게 추가되어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날
마다 더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상태와 자세가 있는 교
회를 향하여 ‘엄밀한 의미(진정한 의미)에서 ‘개혁교회’라는 이름이 사용되어
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종교 개혁 이후 역사의 한 시점에서 
출현된 특정교회들이 아니라, 아담 이후로 있어온 신실한 교회들이요 주의 재
림 때까지의 역사 속에 앞으로 계속 있을 신실한 교회들의 전체를 향한 용어
로 인정되고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역사적 개혁교회’ 안에 있다는 증거는? 
현재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성삼위 하나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서 있는 ‘교회’라는 긍정적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긍정
적 위로 또한 가볍게 다룰 문제는 아닙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있다
는 말은 교회가 ‘최소한’ 16세기의’종교개혁’과 그것을 토대로 한 ‘신앙고
백’의 내용들을 자신의 교회 속에 소중한 유산의 내용물로 간
직하며, 그것을 
가르치고 이루는 일에 힘쓰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만족하고 머무르는 교회가 아니요, 성경 말씀에 대한 더욱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교회의 실질성을 갖추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처럼 역
사 속에서 성경 계시를 통하여 밝혀지는 진리의 내용들을 교회의 행보와 신앙
고백으로 여기며 순종하는 교회가 ‘역사적 개혁교회’안에 속하였다는 증거를 
얻는 것입니다. 

좁은 門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門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
어가는 자가 많고 生命으로 인도하는 門은 좁고 그 길이 狹窄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