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개혁정신과 한국교회의 갱신 1 김재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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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개혁정신과 한국교회의 갱신 1

김재성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종교 개혁주일을 맞이하여 개혁이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김재성 교수
의 “칼빈의 개혁정신과 한국교회의 갱신”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 원
고는 필자가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종교개혁 기념강좌를 위한 원고이
다. <편집자 주>

글의 순서

I. 한국교회의 위기론과 그 대처 방안모색
II. 칼빈의 개혁신학
1. 칼빈의 개혁정신: 권징에 대한 목회적 요청 
2. 세 가지 개혁: 예배, 신학, 교회제도와 조직
1) 예배 개혁
2) 신학의 개혁
3) 교회의 제도와 조직의 개혁
3. 고난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은 지도자 칼빈
III. 결론

1. 한국교회의 위기론과 그 대처 방안모색

그동안 한국교회는 날로 발전하여왔고, 세계를 향한 복음전파와 봉사에서 앞
장서 왔다. 그러나 최근 교회와 관련된 일들 가운데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불미스
러운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한 일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만 탓을 돌리는 것은 바
람직 하지 않다.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우리 한국교회가 더욱 거룩한 생활
에 힘써야만 한다. 문제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이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점은 최근 미국에서 나온 복음주의 신학자들
의 자체분석에서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서구교회의 퇴조는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는 주님의 탄식을 반영하고 있어
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중소형 
교회들과 개척교회들은 전도의 열매가 쉽지 않아서 운영상의 난관에 봉착하
고 있다. 그런가하면 대형교회들마저도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지
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대형교회들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소형교회의 문제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
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총체적 위기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국인들
의 정신구조가 모두 다 잘못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 시대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교육과 문화 모든 분야에 
어두운 그림자가 뒤덮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위기만을 거론하
고 있다.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인들의 심성에 영향을 주는 잘못된 정
신적 죄악들인데, 대부분 그 핵심들은 거론하지 않고서 그저 표피적인 문제만
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의 위기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 결코 아니
다. 마치 우후죽순처럼 거대하게 지어지는 모텔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개탄하
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음탕한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
어나고 있는 것이다. 방탕한 한국인들의 성윤리가 이미 부도덕의 극치를 보이
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재벌구조의 산업화를 추구해왔
다. 대규모 기업집단은 거의 명문반열에 올라서 승승장구했다. 민주주의 발전
과 인권을 희생한 바탕 위에서 이들 대기업의 특혜와 번영이 가능했었다. 그
러나 정직하게 돈을 버는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조건 크고 많
이 벌어들이는 기업만이 버젓이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도의 

급성장 배경에 얽혀있던 윤리부재 현상은 공적자금을 받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근면, 성실, 절제에 가치를 두는 ‘프로테스
탄트의 윤리’가 부재한 한국 기업들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고질병을 고치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가 그저 양적인 확
산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면,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서구 유럽이 당했던 기독
교의 위기를 그대로 맞이할 것이다. 미국 고든 카넬 신학대학원 데이빗 웰즈 
박사는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에서조차도 상업주의에 빠져서 건전한 신학이 사
라지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다. 이러하니 전세계적으로 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기업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대도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는데, 
대형교회 위조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재벌을 선호하
는 한국인들처럼, 대형교회를 향해서 최근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고, 작은 
교회들과 개척교회들은 오히려 성도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대기업에만 입사원서를 내듯이, 
개척교회에 다니면서 희
생과 봉사를 싫어하는 현대 한국 기독교인들의 경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둘째로, 대형교회들이 거의 대부분 지도력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형교회
를 인도해온 유명한 설교자들이던 몇몇 담임목회자들의 은퇴에 직면해서, 혹
은 목회운영과 관련해서 내부적 갈등, 분쟁, 분열 상이 속속 부정적인 영향
을 미치고 있다. 목회자들에게 찾아오는 각종 유혹들에서 넘어지고 나면 곧바
로 사회문제가 되어 버린다. 후임 목회자 선정, 교회 재정운영의 투명성, 목
회자의 윤리적 방탕 등이다. 
그런데도 최근 몇 대형교회들은 지방에까지 프랜차이즈식으로 ‘지점’을 개척
하여, 영상으로 통일된 예배를 들이면서 성도들을 흡수하고 있다. 최근 서울
의 한 대형교회가 전세계적으로 ‘지부’를 구성하여 개척선교를 한다고 하다
가, 미국 보스톤과 로스엔젤레스 목회자들의 강력한 항의와 반발에 직면해 있
다고 한다. 
왜 이미 교회들이 많이 사역하는 장소에 자신들의 대형 교회이름을 사용하
는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해서 중복투자를 해야만 하는가? 이제 한국 대형교회
들은 더 이상 사도행전에 나오는 거룩한 교
회 공동체는 사라지고, 오직 예배
를 참석하고 돌아가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된다.
셋째로, 한국교회에 등장한 불건전한 교회들과 이단 사이비 교회의 증가가 
폭발적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갑자기 늘어난 이단들의 발호는 정말로 큰 일
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개신교 내에서 아무도 적극적으
로 대처하는 기관이 없고, 전문가도 적고, 극심한 저항에 대비하는 마땅한 전
략도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에서 따뜻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단에 감염된다고 하는 바, 인간적인 친절과 편안함에 이끌려
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 기성교회의 책임을 회피할 길
이 없을 것이다. 
지금 대학 캠퍼스에는 각종 이단들이 합법적인 써클로 위장 등록하여 젊은이
들의 혼을 빼앗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단에 대처하는 기관과 인력을 보강하
고 신속하게 재정을 지원하여야 하는데 이런 일에 앞장서는 단체는 힘이 없
고 미약하다. 이단은 이단을 낳고, 불건전한 교리는 또 다른 유사 기독교를 
만들어 낸다. 자기들이 받은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더하기 때문에 자꾸만 이

단적인 요소들이 확산되고 있고, 지금 한국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이단들이 
많다. 정통교회는 정체되고 있는데, 불건전한 교회들과 사이비 이단들은 확장
일로에 있으니 어찌 위기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필자는 위기진단에서 곧바로 비관론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보살피고 있으므로 비관적이지 않다. 세속 문화의 미래
는 비관적이다. 더욱 더 쾌락과 저질 오락문화로 전락할 것이다. 한국의 노래
방 문화가 처음에는 가족들의 노래방이더니, 이제는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
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적 비관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회개와 죄의 고백
을 통해서 새 영을 부여받는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고, 빛과 소금이 될 것이
다. 
따라서, 비관적이지는 않지만 문제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대안을 제시하
여 새로운 한국교회가 되는 길이 어떤 것인가? 칼빈의 신학은 오늘의 한국교
회 위기를 위한 좋은 대안을 제시하며 교훈을 준다는 면에서 역사적으로 신학
적으로 고려할 부분들이 많다.

II. 칼빈의 개혁신학

1. 칼빈의 개혁정신: 권징에 대한 목회적 요청 

칼빈의 목회와 신학저술을 
살펴보면, 암흑기에 진리를 밝혀주는 바른 진리
의 해설들과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를 향한 간절한 호소가 들어있다. 제네바 
교회에 다시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게 되자,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마음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였다. 

만일 여러분들의 목사로서 나를 갖기를 바란다면, 여러분들의 생활
의 무질서를 고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추방하였지만, 다시 초빙하
기로 진심으로 원하신다면, 여러분들 가운데 널리 퍼져있는 방탕과 범죄들을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토록 부도덕한 곳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자신
이 없습니다. 복음의 원수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로마의 교황청도 아니
요, 이단들도 아니며, 방탕하도록 유혹하는 자들도 아니요, 가혹한 학정이 아
니라, 나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육체적 탐욕에 젖어
있는 자들과 술집에서 방탕하는 자들에 대해서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
득 차 있습니다… 선한 생활의 열매가 없는 이 죽은 신앙이 무슨 유익이 있
겠습니까? 진리 그 자체가 과연 중요하게 생각되겠습니까? 어디에서 그런 사
악한 생활이 진리와 일치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던 적이 
있으며, 말한 것에 대
해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습니까? 이젠 두 번 째로 나에게 
여러분들의 도시를 떠나라고 말하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강력한 법으로 다
스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순수한 권징을 다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칼빈은 강력한 권징과 훈련, 교회의 철저한 생활 개혁을 주문하고 있
다. 1541년 제네바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에, 칼빈이 성도들에게 보낸 
공개적인 서한에서 강력히 호소한 것도 역시 경건을 회복하라는 부탁이었다. 
이 때의 칼빈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순교자적인 결심을 하고 독
일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돌아 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좌우명과 같은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라는 말을 담아서 자신을 향
해 그토록 간절하게 제네바로 돌아가 개혁작업을 계속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기
욤 파렐에게 편지를 보냈다.
1538년에 추방명령을 받고 불명예스럽게 떠나야 했던 제네바는 불과 3년여
의 종교개혁이 정립되지 못하여 신학적으로 큰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인가를 분별하지 못하
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신학적인 분별력은 너무나 정확하고 
명료한 대답이었다.
교회는 거룩한 모임이요, 주님을 머리로 한 몸의 지체이지만, 아직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는 날마다 거룩함에 있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의 
주된 저술,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교회가 권징을 실시할 것은 강하게 
피력한 바 있다. 교회 권징이 필요한 여러 가지 이유도 있지만 사도들에게 부
탁한 바울의 간곡한 당부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에는 자기편으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난다는 권고에 기
인한다(행 20:31). 그리고 도나티스트들을 정죄했던 어거스틴이 권징을 강하
게 역설하였음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그 주체가 로마 가톨릭과 같은 주교들을 정점으로 한 정치집단이 되
어서는 안되며, 말씀에 입각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에 의해서 공동으로 시행되
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 이유는 “사탄이 빛의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교
회의 통일과 평화의 결속을 깨트리고 분열시키려는 시도만을 하기 때문이다 
(고후 11:14).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는 거룩한 노력이 부족하며, 영적인 상태를 책임지는 
교회의 책무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게을리 하고 있다. 성도들은 그냥 교회
에 나와주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이익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교회
는 그러한 이기주의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단체가 아니다. 칼빈은 카톨
릭에서 성직자들에게 금지시켰던 세 가지 죄악들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범하
면 주교들의 처벌을 받았음을 상기시킨다. 첫째로 사냥, 놀음, 술취함에 대해
서 금지했고, 둘째로 그 어떤 상업적인 행위나 돈벌이에 나서서는 안되며, 셋
째로 방종하고 타락한 바람둥이처럼 춤추는데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
하였다. 
한국교회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점차 사람을 좀
먹어들어서 결국에는 변질시키고 마는 서양의 오락문화의 영향으로부터 휘말
리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에는 강력한 권징이 시행되
고 살아나야 한다. 악한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되, 성도들이 깊이 반성하는 실
수와 허물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부족하다면,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공동체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유
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에 대한 교회의 영적인 훈육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의 경건한 법이 살아나야만 성도들이 경계하고 조심할 것인데, 영적인 
순결에의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한국교회는 지금 양적인 확산에만 급급하다
니 참으로 본질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