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화합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
2000년 8월 15일은 광복절 경축일이라기 보다는 민족 화합
의 새 장을 여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 분단 50년의 벽을 넘어
남북의 혈육이 만났던 이 날은 민족 화합의 결실을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온 민족이 이들의 만남을 지켜보기 위
해 TV 앞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 것 역시 남의 일로 넘길 수
없다는 민족의 의지를 읽게 해 준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이 일이 어떻게 50년
씩이나 역사와 더불어 공존해 왔는지 안타깝기도 하다. 몇 사
람만 합의하면 그리 쉽게 성사 될 일이 그렇게도 멀고 험난한
세월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
다. 그러나 어찌했든 이산 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환영
해야 할 일이다. 불과 200여 명 만이 가족의 상봉이 가능했다
할지라도 이것은 앞으로 1천만 이산 가족의 만남을 여는 출발
점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나아가 이것은 이산 가족만의 문제
를 넘어
분단 민족의 화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민족의 화합과 더불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날까지
그 길은 지금보다 더 멀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선 당장에 통일 자금으로 수십 조 원의 막대한 자금이 들
것이며 그것은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라
고 진단하는 학자들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통일을 이
룩하는데 있어 돈이 전부는 아니다. 단지 외형적 수치를 기준
으로 정하다 보니 통일 자금이 거론되었을 것이다. 이런 시각
은 일반적인 사회나 정치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
기 때문에 더 이상 거론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사태를 가져오게 된 근본적인 원
인을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 역사
가들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의 결과를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민족 분단
의 원인을 그렇게 단순하게만 보아선 안될 것이다. 그 이전에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간과해선 안되기 때문이
다.
일제 아래의 1930년대 중
반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높은
사회적 영향과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어둡
고 지친 민족의 빛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38년 제27회 장로
교 총회(총회장 홍택기)에서 신사참배의 합당성을 결의한 이후
부터 한국교회는 배교, 친일행각, 민족배신의 길을 걷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부르짖고 몇몇 순
교자가 발생하였지만 상당수의 목회자와 교회는 신사참배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안부로 또
는 학도병으로 내몰고 일제의 승리를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하
며 교회당의 종과 철문을 뜯어 병기 제조용으로 헌납하는데
앞장섰던 몇몇 인사들이 지금도 명성을 얻고 소위 교계 지도
자로 행세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해방 후에도 친일파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교
회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유린당하고 말았다. 거기에다 소위 신
신학이라는 자유주의 신학이 도입되면서 성경의 권위마저 실
추되는 최악의 사태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 한국교회는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있던 중 6.25라
는 민족 상잔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
이다. 그렇다면 오
늘날의 이 사태에 대해 한국 교회가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교회라면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 더욱 가슴 아파해야 하지 않
겠는가?
이제 제85회 총회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회는
민족 분단 50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교회사를 새롭게 정
립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무너진
북한 교회의 재건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북한교회재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1945년을 전후해 북한에
는 2,850여개 이상의 교회와 700여명의 목사가 있었고 더 많
은 수의 조사와 장로들이 있었다고 한다. 성도 수만 해도 30
여 만 명의 개신교 성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총회가 잘못
된 과거를 청산하고 북한 교회의 재건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한다면 민족 화합의 길이 의외로 빨리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민족 화합의 길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