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말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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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말을 앞두고

우리는 지금 20세기의 끝에 서 있다. 예전 같으면 세기말에 관한 이야
기가 요란한 화두로 등장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2000년대를 맞
이한다는 대대적인 행사가 있어서 인지 20세기를 불과 6개월도 남기지 않
은 지금은 오히려 담담하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끝보다는 시작을
좋아하는가 보다. 그렇게 대망의 2천년대도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났다.
지난 상반기 동안 한국 교회를 살펴보면 두 가지의 큰 이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50여 년의 분단의 벽을 넘어 남북 정상의 만남과 더
불어 교계에 불어닥친 화해의 무드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 바람은 교
단간의 연합과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상당히 구체적인 결실을 향해 진
행중이라 한다.
현재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두 개의 큰 기구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들 수 있다. 이 두 기구가 바야흐로 하나가 되
기 위한 의사 타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명실공히 이제 개신교를 
대표하는
새로운 기관으로 거듭 태어날 날도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다. 교계는 통
일을 앞두고 교계가 하나로 힘을 합쳐야 북한 교회를 재건할 수 있다고 하
며 두 기구의 통합을 환영하고 있다. 아울러 교단 대 교단의 통합이나 화
합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50년대
이후 거듭 교단의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개신교의 입지가 약화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20세기를 넘기는 시점에서 교계가 하나되
는 화해의 무드가 힘을 얻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
다.
반면에 또 하나의 주요 이슈는 최근 몇몇 대형 교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목사직 세습에 대한 갑론을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교계의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반 언론에서 오히려 관심을 가지
고 여론화 함으로서 교계에 적지 않은 당혹감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발맞춰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는 교회세습문제를 가시화하고 기독시
민단체와 연계하여 교회법상 ‘세습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
섰다. 교계가 목사직의 세습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성경적 이론이나 검증
을 게을리 한 것이 결국 이러한 논란을 불러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이슈를 대하고 보면서 교계의 상반적인 반응을 볼
수 있다. 즉 전자와 같이 외형적으로 큰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
는 교계가 적극적이지만 후자와 같이 교회 내의 아픔이나 문제점들을 대하
는 자세에 대해선 매우 미온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 오히려 후자의 이수에 대해 교계가 먼저 각성을 하고 진지하게 여론화
시켜야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앞선다. 세습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있었
다면 구태여 일반 여론에서 그처럼 비판적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이다.
차제에 교계는 이 점을 교훈 삼아 외형적인 성과 위주의 행사보다는 내
면적인 자기 성찰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세습이
허용될 수 있다는 점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잎을 다물고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제 두 달만 있으면 85회 총회가 개회된다. 이번 총
회는 형식적인 성
과위주가 아닌 우리의 내실을 명확하게 점검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총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