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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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석의 북카페

현대문화와 지성적 증인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레슬리 뉴비긴| 홍병룡 옮김| IVP | 205쪽| 2005년

서평| 조주석 목사_합신출판부편집실장 

인도에서 삼십오년 동안 선교 활동을 펴다 1974년 65세의 나이로 귀국한 영
국인 레슬리 뉴비긴은 자신의 조국이 참으로 낯선 이방 나라였다. 그가 보기
에, 다시 찾은 조국 영국은 복음을 멸시하는 이교도 사회였다. 공적 영역에
서 기독교 복음이 사실이나 진리로 주장될 수 없는, 사적 영역의 가치로 취
급되는 강력한 다원주의 사회였다.
뉴비긴은 영국의 이런 이교적 현실에 강한 도전을 받았고 복음을 서구 문화
에 어떻게 대면시킬지 애쓰게 된다. 귀국 선교사가 영국을 위한 선교사로 변
신한 것이다. 새로운 사명을 느낀 것이다. 인도 선교사에서 돌아왔으니 이
젠 쉴 때도 됐건만 역전의 용사에게는 그런 휴가도 누릴 수 없는 절박한 현
실이 
코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의 선교적 과제는 복음이 공적 영역에서 어떻
게 하면 진리 주장을 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복음을 상실한 서구 사회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뉴비긴은 공적 자리에서 강연을 하고, 또 저술을 하
여 공적 영역에 복음을 대면시킨다. 그 결과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1986년),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1989년),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
(1996년)라는 책들이 출간된다. 나는 근년에 들어 이러한 책들을 읽었고 기
독교적 지성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뉴비긴의 저술은 반기독교적 지성적 환경, 즉 무신론적 환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복음이 왜 진리인가 하는 것을 다층적으로, 즉 문화적 
학문적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변증 작업, 고도의 지성적 작업이 펼쳐진다.
이런 작업에는 많은 질문이 던져져야 하고 그것을 해명해야 하는 고된 지적 
작업이 따라야 했다. 서구 문화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런 문화는 어디에 뿌
리를 두고 있는가. 서양의 모든 학문은 인과율, 즉 원인과 결과라는 등식을 
중시하는데 이는 무엇을 배제한 채 나온 것인가. 또 정치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그것은 타당한 비전인가. 그 비전
의 한계는 없는 것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해 나가면서 서구 문화
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복음과 정면으로 마주서게 한다. 
계몽주의 이래 서구 문화는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면서 자연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목적론을 배제한 채 인과율만 용인함으로써 그리
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복음을 공적 영역에서 몰
아낸 후 사적 영역에 꽁꽁 유폐시켰다. 복음이 자연주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사적 가치의 영역에 갇힌 까닭에 그의 지성적 작업은 결코 간단한 작업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노고로 인해 그리스도의 나라를 증거하는 그리스도
인의 사명, 교회의 사명은 사적 영역에서 풀려나 공적 영역으로 자연스레 옮
겨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공적 영역에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
다. 이런 증인의 삶에는 강력한 지성적 회심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신앙의 
공동체와 일반 사회를 나누는 경계선은 회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현대 용어
로 빌어 말하자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 두 사회는 하나의 복음을 놓고 회심이라는 경계선 사이에서 한쪽은 실재
로 믿고 다른 쪽은 신화나 환상으로 간주한다. 이렇듯 이 두 사회는 서로 다
른 타당성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역사는 하나이지만 그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
이 다른 까닭에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을 갖게 된다. 단 하나의 역사를 두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유신론적이든 무신론적이든 할 뿐이다. 
우리의 현실을 잠시 돌아보자. 독제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칠팔십년대에
도 우리는 여의도 광장에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었다. 이천년대
에 접어들자 그런 무대는 다시 시청 광장으로 바뀌었고 촛불집회, 구국기도
회가 연이었다. 이렇듯 공공의 영역에서 기독교를 증거해 왔고 또 세를 과시
해 온 셈이다. 이런 특권은 한편 부끄러운 것이나 이를 용인하는 사회 환경
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한 현상이 아니다. 

정작 복음을 멀리하는 우리들

이런 환경에서 자만이나 나태의 수렁에 빠지지 말고 복음을 깊이 사랑한 뉴
비긴의 노력과 열정을 되살려 내야 한다. 이런 지성적 노력이 우리 한국교
회 도처에서 찾을 수 있어 반갑지만 대다수의 흐름은 이와 역
행하고 있어 안
타까움 또한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