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갈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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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석의 북카페

갈대상자

조주석_합신출판부편집실장

김영애 지음, 도서출판 두란노, 352쪽 

밀린 교직원의 급여를 지급하려고 교육부에 예치해 두었던 학교 돈을 총장이 
차용해 씀으로 횡령죄로 구속된 일이 있었다. 사적 목적에 쓴 것은 아니나 행
정 책임자로서 이도저도 못할 어려운 지경에서 한 일이라 했다. 지난 달 4일
에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을 방문하던 차 다른 직원에게 전해들은 한동대 김영
길 총장의 이야기다. 세간에서는 떠들썩했는데도 나만 모른 아주 새로운 뉴스
였다. 외국 갔다 온 것도 아닌데 내가 둔한 것이 분명하다.

지은이인 김영애는 김영길 총장의 부인이다. 그리고 이 책은 포항에 있는 한
동대라는 무대에서 펼쳐진 10년의 이야기를 주로 담는다. 플롯은 회상식이
다. 첫 장을 펴자마자 현직 총장과 부총장이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되는 이야
기로 시작한다. 2001년 5월 11일의 일이다. 세간은 상당히 떠들썩했던 모양이

다. 

진행은 다시 카이스트의 김영기 교수의 한동대 수락 장면으로 돌아가 7년전 
이야기부터 지은이는 시작한다.
이렇게 일단 막을 내리고서 이야기는 다시 더 근원으로 올라가 두 사람이 부
부가 된 달콤한 결혼 이야기, 김영길 총장의 서른두 살 때의 중생 이야기, 
1979년 유치 과학자로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이야기, 한때 카이스
트에서 별 풍파 없이 안온하게 보냈던 행복한 나날들이 부담 없이 술술 나온
다. 

이 행복을 깨고 그들의 삶에 내습한 강타는 한동대 총장 제의였다. 남편을 돕
는 자로서 아내는 이 현재의 안정된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 
계산에 덜 익숙한 남편의 결심에 시간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마침내 
한동대로 더 낙향한다.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 계속된다. 수십 억 아니 수백 억이라는 돈의 고통, 끊임없는 고소 고
발로 인한 모욕……. 오죽했으면 아내가 욕실로 뛰어 들어가 옷을 입은 채 샤
워기를 틀어놓고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울고 또 울었겠는가. 눈물에 인색한 
나조차도 여러 차례 코가 찡하고 가슴이 울컥했다. 

그들
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왜 이런 고통을 스스로 자취해야만 했는가. 아내의 
소망처럼 편히 카이스트에서 지냈더라면 세계적인 과학자로서 대접도 받고 많
은 업적도 남겼을 텐데. 포항에서 1심 구형이 떨어지던 날 검사 앞에서 한 최
후 진술에서 그 이유를 우리는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저는 한동대를 통
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을 견뎌 왔습니다.” 사명감, 참으로 무겁디 무거운 단어다. 이렇듯 그
는 삶의 문제 앞에서 유불리를 따져 편한 쪽으로 저울추를 놓는 범인이 결코 
아니었다.

사명은 자신을 깨뜨리는 일이요 모든 안정과 완전히 결별하는 올가미다. 왜
냐, 그것은 섬기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부부의 삶에서 그것을 확
연히 읽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한 사례로는, 교직원의 월급을 주지 못하자 
끝내는 이제까지 미뤄뒀던 카이스트에 사표를 쓰고 16년간의 퇴직금까지 몽
땅 떨어 한동대에 넣어야 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옛날로 돌아갈 수도 있다
는 아내의 희망과 피난처가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
내는 그 후로 오랜만에 자유도 느끼
고 또 야윈 몸도 차츰차츰 되찾는 경험을 
한다. 최후에 붙잡을 끈마저 놓아버리는 자기 버림의 위력이 바로 이런 것이
라.

후원금이 수억 단위로 나오고 지인들이 박사들로 수두룩하니 서민과는 먼 일
로 보여 좀 심기가 불편키도 했다. 또 성경을 묵상하여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
는 것이 어느 때는 무리다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도회의 안락한 귀족적
인 신앙생활을 접고 한동대를 하나님과 조국이 자기에게 맡긴 사명으로 인식
하고 무던히 참아낸 저 낮은 인고의 삶은 분명 서툴게 사는 내게 큰 울림으
로 다가왔다. 한동대 후원운동 이름인 ‘갈대상자’를 책 이름으로 쓴 이 이
야기는 힘없는 관념적인 신앙에 큰 도전장을 내민 아름다운 서사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