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교인들을 위한 교리교육의 실제
<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
“교리 교육은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시작하는 말
필자는 최근까지 1년 10개월 동안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장년들을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쳤다. 이때 가르친 것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 개관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소요리문답이었다.
필자는 담임목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부교역자 시절에 학생들이나 청년들에게는 교리를 가르쳐 본 적이 있지만 장년들에게는 교리를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장년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야겠는데 어떻게 교리를 가르쳐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주위에 있는 선배들이나 동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필자의 주위에는 여기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하기로 했다.
1. 금요 기도회 시간에 교리공부 도입해
우선 교리를 전체 교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마땅한 시간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구 개혁교회의 전통에 따라 주일에 하려고 했지만, 주일 오전에는 교인의 층위가 너무 광범위한데다 교회력과 절기 등을 고려하다 보니 할 수 없었고, 주일 오후에는 매달 1-2회 있는 헌신예배와 각종 행사들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금요기도회 시간에 교리를 가르치기로 했다.
금요기도회 시간에 설교를 하지 않고 교리를 가르쳤는데 교리를 처음 배우는 교인들에게서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도회라면 모름지기 말씀이 은혜롭고 뜨거워야 하는데 교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고전적인 표현들로 가득 찬 교리를 듣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목사가 저러다 말겠지 하던 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들은 필자에게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물론 교리를 배우니 좋다고 말한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은 것인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힘들어 하는 필자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가보자라는 생각과 교리가 언제가 사람을 변화시키겠지 하는 막연한 신념을 가지고 필자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반응이 시원찮으니 필자 자신도 재미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장년들에게 교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되었다.
2. 교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방법 모색하길
교리를 가르칠 때 교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야 하고 그들의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젊은 청장년들일 경우에는 교리의 문구를 충실히 해설하면 된다. 보충 자료들을 활용하여 교리의 역사적 배경부터 성경의 근거 구절까지를 다룰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장년들의 경우에는 다르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처럼 이해력이 높지 않다. 게다가 그들의 삶의 정황은 복잡하고 다단하다. 따라서 목사가 알고 있는 지식을 마구 말해 봤자 알아듣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특히 넓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말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나이가 어느 정도 든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에는 그들의 이해도와 관심도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 2번째 주일부터 4번째 주일까지(3문-11문)에는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교리가 나온다. 이것을 가르칠 때에 신앙고백서에 적혀 있는 문구 자체만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이해를 잘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이해했다 하더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따라서 이런 교리를 가르칠 때에는 그 문구에 담겨 있는 뜻을 풀어서 가르쳐야 하고, 그 뜻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즉 원죄와 자범죄로 인한 인생의 비참함과 무능함이 실제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며 체감되는지를 설득력 있고 생생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실존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은 교리 교육은 효과적이지 않다.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위주로 시작해
필자는 장년들에게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설교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강의보다는 설교가 장년들에게 적합하다. 만약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작은 그룹에서 교리를 가르친다면 교리의 문구 자체를 충분히 다룰 수 있겠으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장년들을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치려면 그룹이 크든 작든 교리의 문구 자체를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다.
교리를 가르치는 목사야 이미 준비된 사람이니 괜찮겠지만 교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장년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장년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에는 설교 형태가 낫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는 52주 동안 다룰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목사가 일주일에 한번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설교한다면 1년 동안 특정한 본문이나 주제에 치우치지 않고 성경 전체의 주제를 골고루 가르칠 수 있게 된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를 설교할 때에는 그 주일에 해당하는 문답들을 충분히 연구한 후에 관련된 성경본문을 찾아 주해하면서 연결하여 설교하는 것이 좋다.
이때 성경본문을 주해하는 것이 주가 되어야지 문답의 문구들 자체가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리 자체는 설교의 근거가 아니다. 교리는 성경본문을 해석해서 나오는 교훈일 뿐이다. 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볼 때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의 순서대로 설교하는 것이 좋지만 때로 교회의 일정과 상황을 고려하여 순서를 바꿀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례는 25번째 주일부터 31번째 주일까지에 위치해 있으나 몇 주 후에 성례가 있다면 그 부분을 먼저 설교할 수 있다.
마치는 말
목사는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융통성 있게 교리를 설교할 필요가 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는 문구들이 대체로 쉽게 되어 있다. 다른 신앙고백서들에 비해서 문구가 길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의 제일 앞에 나오는 ‘위로’는 전체 내용의 목적이요 이유이다.
따라서 이 신앙고백서를 설교하는 것은 다른 신앙고백서 설교보다 쉽고 유익하며 점차 다른 신앙고백서들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다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