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전지 이론과 신앙고백의 보존
< 김영규 교수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신앙고백서들을 교회가 보존하고 그 이하로 내려가지 말아야”
시간을 뒤로 가지 못하는 비가역적 자연수로 시간을 우리가 세고 있을 때, 그런 시간을 우리는 칸트가 이해하듯이 공간처럼 그렇게 주관의 선험적 형식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 물리학에서 쉽게 상정하는 시간에 대한 변수처리는 더욱 더 웃을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운동으로부터 시간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고 기존 차원에 그것을 한 차원으로 더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하다. 그런 시간이 기존의 차원에 플라톤–데카르트의 좌표 개념처럼 직각관계의 하나를 더한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 중 대표적인 한 예라고 생각된다.
사실상 어떤 절대적인 것을 상수처리하고 길이를 상대화시키는 것처럼 있지도 않는 시간을 상대화시키는 일이란 하나님 없이 피조세계를 피조물이 스스로 절대화시키는 어떤 방식과 다름이 없다. 틀리지 않는 이상 그때까지 진리라는 구실아래 어던 이론이 과학적 이론이라고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이 우리의 무지를 증명하는 가장 절묘한 길일 가능성이 높다.
얼마전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에서 연구하는 한 연구원으로부터 노포포라는 이름으로 2011년 6월 일본에서 소위 물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고 일본신문 보도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 마그네슘 음극과 탄소인 양극 사이에 물을 공급하여 각각의 소재에서 이온이 용출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물이 아니더라도 커피, 콜라 등 음료수를 주입하더라도 전력발생이 가능하다고 하여 그런 전지로서 세계 최초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보도는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 아주 부끄러운 주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먼저 개발된 물 연료 전지에 대한 세계 각국의 물타기 작업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허 전쟁이나 기술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얻게 된다.
일본에서 발표된 물 배터리는 전형적인 볼타전지의 기술 방식으로서 1841년 챨스 워커(Charles V. Walker)가 물 배터리(water-battery)라고 칭한 전형적인 그 전지이어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달리 일본은 그 발명을 아주 크게 평가해 주고 있다는 점인데, 그런 보도에 대해서 웃을 내용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주류 과학계나 특허청 및 대기업들이 아마 일본의 그런 배터리의 대대적 보도처럼 물타기 작업에 적극 참여하거나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배터리의 전력생산의 원인과 관련하여 마그네슘이 물이나 소위 전해질 용액에서 이온화되는 현상에 전기발생의 원인이 있다는 1883년에 발견된 아르헨니우스(Svante August Arrhenius)의 이론이 대학에서 자신의 박사학위 과정에서나 그 당시 지배적인 과학자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지 못했어도 긴 싸움 끝에 1903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음으로 인정을 받는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그 이론도 지금 불완전함을 알리는 내용이 지금 한국에서 개발된 물 연료 전지 개념이다.
즉 소금이 물에 잘 녹을 때, 나트륨이나 염소가 물에서 쉽게 이온화되어 전자들이 자유롭게 배회하는 상태가 됨으로 전기 전도도가 높게 나타나지만, 설탕물이나 알코올이 물에 잘 녹거나 퍼지더라고 그 고분자들이 이온화되지 않아 전기 전도도가 낮다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금속의 이온화로 인한 자유 전자들의 배회도 있지만, 이온화 준위와 관계된 특정한 금속들 사이에서 그 금속들의 이온화나 물에 이온들이 없는 순수한 물의 경우에도 빠른 물의 이온화, 혹은 수소이온의 널뛰기나 펌핑이 원인이 된 자유 전자들의 배회도 전력생산의 다른 원인이 된다는 이론이다.
그런 일은 특별히 셀룰로오스와 같은 분자들의 구조 속에 더 빨리 물의 이온화 현상이 일어나 금속에 물이 직접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전력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기술이다. 바로 세포와 같은 자연 자체가 이미 이런 원리에 의해서 전기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수 천 년 전에 욥이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땅을 어떻게 허공에 매달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물었던(욥 26:7) 물음이 아직도 현대의 장 이론이나 입자 물리학에 의해서 최종 답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최근에 약력이나 전자기력 혹은 강력의 세계가 각각 힘의 입자들의 발견에 의해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복병을 만나고 있다. 전자기력과 같은 낮은 에너지에서만 광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톱 쿼크나 힉스 입자들을 생성하는 세계를 넘어 훨씬 높은 에너지에서도 광자가 생성되어 나온다는 사실이 그 복병이다.
광자가 낮은 에너지 세계 속에서 자기력의 원인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훨씬 근원적으로 중력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고 하는 새롭게 제기된 문제가 지금까지 모든 이론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최초에 ‘빛이 있으라’는 명령을 새롭게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인류가 포기하지 않고 끊임이 없는 의심들 속에서도 사실의 진실성이나 성경의 진실성이 좀 더 크게 발견되는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성에 따라서 진실되게 고백한 고백서들은 교회나 인류가 그대로 보존하고 그보다 덜 한 것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가장 숭고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