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과 왼손
<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
“교회에서는 주로 성도들이 목사를 위해 왼손 역할 감당하게 돼”
어제 또 왼손을 다쳤다. 오른손에 드라이브를 들고 뭘 좀 하다가 그만 왼손을 찌르고 말았다. 옆에 보이는 종이 한 쪽 찢어서 지혈하고 급한 대로 셀로판테이프로 고정하고 그냥 다녔다. 다친 손으로 샤워를 하자니 좀 불편하다. 그렇다고 오른손을 탓할 마음은 없다.
내 왼손에는 사실 상처가 굉장히 많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우리 집에서 토끼풀을 베는 것이 내 담당이었는데 오른손에 낫을 들고 왼손으로 풀을 잡고는 풀을 벤다는 것이 서툴러서 왼손을 찍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대충 봐도 왼손에 난 흉터가 스무 군데는 넘어 보인다.
그 외에도 나는 이런 저런 물건을 고치거나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오른손에 연장을 들고 일을 하다보면 다치는 것은 주로 왼손이다. 과일을 깎을 때도 오른 손에 칼을 잡기 때문에 혼시 손을 베인다면 틀림없이 왼손이다. 오른손이 힘이 세다고 하면 왼손은 섬세하다. 그래서 샤워를 할 때에는 왼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청소를 할 때 더러운 물건도 왼손으로 처리한다.
실수로 왼손을 다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아들 예찬이는 왼손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데 중학교 때 조각칼에 난 상처이다. 나무를 파내려고 오른손으로 힘을 주었는데 조각칼이 미끄러지면서 나무를 붙들고 있던 왼손을 파 버린 것이다. 아마 왼손에 난 상처 자랑 대회를 열면 다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서도 왼손은 또 붙들어 주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오른손을 미워하지 않는다. 종종 오른손이 다치거나 아파서 왼손으로 뭔가를 해 볼라치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왼손은 어디까지나 보조역할이며 훌륭한 파트너일 뿐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오른손을 향해 왼손을 향한 가해자라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형성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어떤 사람은 오른손이 되고 어떤 사람은 왼손이 된다. 그리고 왼손은 뜻하지 않게 오른손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그러고도 또 오른손을 위한 보조 역할을 꿋꿋이 감당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주로 아내들이 왼손의 역할을 한다. 회사에서는 주로 아래 직원이 왼손 역할을 감당한다. 교회에서는 주로 성도들이 목사를 위해 왼손 역할을 감당한다. 이렇게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어떤 오른손도 왼손 없이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어떤 왼손도 오른손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만일 오른손이나 왼손이 혼자서 뭔가를 하려면 엄청 고생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른손은 왼손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모든 공로를 왼손에 돌려야 한다. 또한 왼손은 오른손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고 의도하지 않은 가해까지도 양해하고 동반자로 살아가야 한다.
어제 왼손을 다쳐서 불편을 느끼면서 또 결심한다. 오른손은 제발 왼손을 배려해야하겠다고. 혹시 왼손이 다칠지도 모르는 위치에 있지 않는지 먼저 살펴야겠다고. 혹시 일이 조금 지체되더라도 다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라고.
나는 어릴 때부터 다친 왼손을 너무 함부로 취급했다. 풀 베다가 다치면 쑥 잎으로 지혈하고 바랭이 잎으로 묶어주면 그만이었다. 때로는 어제 했던 것처럼 아무 종이나 찢어 지혈하고 문구용 테이프를 감아주고 만다.
깨끗하고 예쁜 대일밴드라도 하나 붙여 주어야겠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 때문에 다치는 사람도 그렇게 토닥거려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