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형 믿음_이재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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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형 믿음

이재헌 목사·대구동흥교회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동물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아마도 강
아지와 고양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고양이보다는 많은 사
람들이 강아지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고
양이보다는 강아지가 사람들을 잘 따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완동물 중 강아지 선호해

고양이와 강아지는 가지고 있는 각각의 기억 장치가 매우 다르다고 한다. 강
아지는 그 주인이 열 가지를 잘못하다가도 한 가지만 잘 해주면 그 한 가지 
잘 해주는 것 때문에 앞에 것은 다 잊어버리고 주인을 졸졸 따르고 고맙게 
생각하는 반면, 고양이는 사람들이 열 번을 잘해주다가도 어쩌다 한 번 잘못
해 주면 그동안 잘해준 것을 싹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만 생각하고 토라져서
는 주인을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성도들 중에도 강아지형의 성도들도 있고, 또 고양이형 성도들
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 준 은혜를 생각하고서 그 간
에 자신이 당한 고통과 어려움은 순식간에 다 잊어버리고 감사하며 사는 사
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축복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어쩌다 한 번 누군
가의 실수에 의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그것을 빌
미로 지난 날 받았던 모든 사랑과 은혜는 다 묻어 놓고 불평과 원망을 일삼
는 사람도 있다. 
목회자를 향한 마음도 그렇거니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모습들에서도 별로 
다름이 없다. 물론 이처럼 야비하고 부끄러운 모습들이 목회자들에게조차도 
예외가 아님을 고백하며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피랍 사건을 계기로 교회를 향한 사회적
인 여론들이 그리 좋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을 본다. 그 여론에 밀려 
교회까지도 자성의 목소리를 넘어서 지나친 퇴보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다
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자칫 교회 가운데 선교의 
열정들이 위축될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분명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성하고 수정해야 할 부분들도 많이 있다. 무분
별한 단기 선교나 봉사활동을 재고해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
를 결코 흘려버
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받은 복음의 선물들을 더 
이상 나누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모습은 더더욱 옳지 않다고 본다.
육지를 제대로 밟아 보지도 못하고서 이 땅에 뜨거운 순교의 피를 쏟은 토마
스 목사나 양화진에 묻혀있는 셀 수 없는 생명들을 이 땅에 보낸 나라들과 
교회들이 조선 땅에 입국을 제한하며 더 이상의 조선 선교는 무모한 짓이라
고 결론짓고 돌아서 버렸다면 오늘의 한국 교회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는
가?
무엇을 더 크게 우리 가슴에 기억하며 행동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감사를 말하며 사례하는 일들이 감사절에 맞추어서 혹은 위험성이나 
손해되는 일이 없을 때에만 하는 것을 분명 아닐 것이다. 부정적인 것으로 
각인되어 불평하고 소극적으로 문을 걸어 잠그기보다는 긍정적인 일들을 깊
이 새기며 감사와 사례를 더 크게 드러내는 강아지형의 성도와 교회가 더 하
나님의 마음에 가까이 하는 모습이 아닐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명령이며 필수적인 의무 
사항이다. 분명히 우리 주변에는 감사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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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하지만 감사할 만한 요인들 또한 많이 있다. 다만 우리의 기억 장치
에 어떤 것이 더 강하게 입력되어 있는가의 차이에 따라 감사의 사람도 될 
수 있고 불평의 사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의 기억 속
에 감사의 사건들이 많이 남아 있다면 그 사회는 분명히 긍정적이고 발전적
인 사회가 될 것이다. 

감사할수록 발전적 사회될 것

그렇지 않고 부정적인 사건이나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결
국 정체의 과정을 지나 서서히 뒷걸음질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런 목회자
가 인도하는 교회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들을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
다. 수많은 불평보다 한 가지의 감사가 크게 각인되는 우리의 가슴이길 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