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인식과 웃음과 계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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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과 웃음과 계시의 세계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일상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뇌가 예상하는 질서를 갑자기 깨고 그럴 듯한 질
서를 야기하는 말의 표현이나 행동 표현에서 생기는 웃음이 오늘날 건강을 
위해서 웰빙 문화의 하나가 되고 있다. 설교 상에서도 듣는 사람들로 지루하
지 않도록 종종 번역된 성경의 우리 말 어감을 가지고 웃기는 경우도 있다. 

성경 언어 유희도 주의해야

물론 성경의 언어를 사용할 때 성경에서 침묵하는 것을 호기심을 갖고 마음
대로 표상하지 않고 성경으로부터 분명히 말씀하신 것을 침묵하여 지나가지 
않도록 하는 적정과 절도의 원리(regula modestiae et sobrietatis)가 필요
하다. 그 원리는 모세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하신 말
씀이나, 욥기의 주제 및 직접적으로 로마서 12장 3절에 근거고 있다. 적어
도 일명 아레오파고의 디오니시우스, 예루살렘 시릴, 크리소스토무스 등 교
회 교부들에 의해서 주장된 ‘오직 성
경’의 정신이 오래된 해석 원리로 남
아 있다. 그것은 말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생각의 원리요 표상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 40절의 속옷의 개념을 가슴과 하체만을 가린 방식으
로 디자인된 로마시대의 여성 비키니 속옷처럼 표상하여 말하는 사람이나 듣
는 사람들이 농담에 빠지는 경우이다. 그러나 겨울용 외투(paenula)나 겉옷
(toga, stola, pallium)과 다른 그 옷(tunica)은 요한복음 19장 23절에 잘 
표상 된 대로 위로부터 전체로 이음새가 없이 통으로 짠 옷도 있지만, 대부
분 두 개의 천(plagula)으로 이어서 만든 옷으로서 비싼 것은 그 당시 일상
의 임금보다 거의 75배나 비싼 옷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걸치고 있
는 옷 중에서 유일하게 전당잡힐 수 있는 품목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 말씀으로부터 질감이나 재질 및 디자인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때의 어감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
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 19:24)고 했을 때의 우리말들의 바늘귀와 원문
상의 바늘구멍 사이의 어감 상 차이와 비슷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바늘의 
용도와 
사용하는 시기,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어감들이 또한 다를 수 있
다. 
티베리우스 황제, 클라디우스 황제, 네로 황제 시대에 걸친 아주 드문 가족 
파피루스들에 의하면, 같은 사람에 의해서 쓴 같은 단어일지라도 미묘한 필
체는 물론 단어 표기들까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자신의 언어 감각
과 지식 및 기억력, 및 외형적인 쓰는 행위들에 따라서 그 때 그 때마다 다
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필체일지라도 개인의 필체에 따라 변화하는 모양이 
있고 장기간 혹은 어느 사람, 어느 시대에도 변화하지 않은 필체들의 특별성
과 늘 변할 수 있는 개별성에 의해서 좁게 혹은 길게 시기와 시대가 구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언어들의 역사적 의미로 정확하게 돌아갈 때, 웃
을만한 어감까지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대부분 성경을 통해서 시대
의 언어들과 만나는 특별성과 겨우 만나 우리의 어감으로 느끼는 정도에 의
해서 농담이 가능하다. 
대부분 농담으로 즐길 때, 읽는 자 자신의 독백으로 어감을 느낀다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조
차도 
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서로 독백하고 서로 다르게 표상하는 과정에
서 농담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농담이외에 시나 다른 예술로 나타
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 어느 시기에서 같은 것을 같은 것으로 느
끼고 또는 같은 것을 다르게 느끼며 그 느낌으로 웃기 시작한지는 정확하게 
증명된 것은 없다. 
뇌 세포들의 수상돌기와 그 연접부들의 유연성에 있어서의 차이까지 유전정
보에 의존한다면, 유전정보들의 차이에서부터 그 특별성과 개별성이 나타나
는 최종적인 발현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 유전정보들이 환경과 대화하는 개방
성과 자유성 및 예외성도 대뇌피질로 향하는 정보들의 비가역적 방향들을 거
시적으로 조절하는 크고 작은 자아 세계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자아 세계들에서의 변화가 조금 더 큰 거시 세계의 자아 세계에 나타
난 웃음이 곧 농담으로 느끼고 있다면, 대뇌피질들의 조밀한 뇌 세포들 상
에 뿌려진 정보들은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는 정보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왜 외부 정보들의 흐름들이 우리 안에서 그런 정보들로 뿌려져
서 웃는지는 아주 신비한 것이다. 
병원의 환자들이 표현
하는 고통의 소리나 뇌 손상으로나 웃음의 전염병으로 
인한 깔깔대는 행동들이나 같은 뇌 손상으로 인한 반 고흐의 그림들 사이에
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정보들이 흐르도록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
이 처음의 것과 마지막의 것으로 보존시키시고 흩으시며 다시 모으시는 하나
님의 모든 역사들이 전부 이해될 때, 성경에서 기록된 사실들의 무오한 성격
이 인간 앞에서 가치화 될 것이다. 

성경 무오는 하나님의 역사

우리가 모든 현상들을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작업은 우리에
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한 성격은 그 어려
운 작업 속에서 더 크게 증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