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흥칼럼
다빈치코드 영화상영이 주는 의미
김수흥 목사_합신초빙교수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 ‘다빈치코드’가 드디어 5월 18일(목) 세계
적으로 동시에 상영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서울 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
는 한국기독교 총연합회가 영화배급사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를 상대로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역시 지난 5월
18일(5월) 국내 400군데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다빈치코드 일제히 상영돼
재판부는 “영화 내용이 사실이라고 오인시킬 개연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고
우리 사회의 평균인은 예수의 생애나 기독교에 대해 구체적 관념 및 신념을
갖고 있는 상태이고 그 관념이 영화를 보는 과정에 변경된다고 보기 어렵
다”고 보아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쉽게 말해 재판부는 원작 소설과 영화
가 허구임이 명백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허구라고 하면 “예수”라는 이름이나 “막달라
마리아”라
는 이름을 쓰지 않았어야 했고 또 “예수”라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라
는 여인과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았다는 내용을 빼거나 아니면 이름을 바
꿔야 했다. 다빈치코드는 분명 기독교에 대한 음해를 시도했고 또 그로 인
해 흥행에 성공해보자는 계획을 가지고 제작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예수
님을 심각하게 모독했고 또한 기독교회를 짓밟으려는 음모가 대단했음을 부
인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이미 이 땅에서 상영되었으므로 몇 가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다빈치코드 상영은 모든 제작진들에게 심각한 재앙을 의미한다는 것
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으므로 훗날 엄청난 민족적
인 재난을 만났고(출 32:6; 고전 10:7), 또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간음하다
가 하루에 23,000명이 떼죽음을 당했으며(민 25:1-9; 고전 10:8), 또 이스라
엘 민족 전체는 광야에서 여행의 고달픔과 시원치 못한 음식 때문에 하나님
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뱀에게 물리는 참상을 만났다(민 21:4-6; 고전
10:9). 그리고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수백 명이
땅이 갈라져 삽시간에
매몰된 비운을 만났다(민 14장; 16장; 고전 10:10).
오늘의 영화 다빈치코드를 만든 사람 모두는 어려움을 만나기 전에(고전
16:22) 심각하게 통회 자복을 해야 할 것이다(마 5:4).
둘째로 다빈치코드 상영은 민족적인 재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만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400군대의 영화관에서 많
은 사람들이 관람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람 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
부는 말하기를 “평균인”은 그만한 상식이 있어서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했
으나 평균인이 못되는 사람들도 관람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영화를 관람하는 중에 단 몇 사람이라도 실족(失足)하는 경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결과를 초래케 하는 다빈치코드는 분명 이 땅
에 화를 부를 것임이 틀림없다(마 18:6).
셋째로 다빈치코드 상영은 일종의 환난이라는 것이다.
환난은 시대마다 그 얼굴을 달리하고 나타난다. 어떤 때는 이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저 모습으로 나타나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넘어뜨린다. 히브리
서 11:36-37에 보면 옛날 믿음의 선진들이 당한 육체적인 심각한 환난을 기
록하고 있다.
근대의 환난은 마약과 도박 그리고 음란과 향락이었다. 다빈치
코드는 약간 모양을 달리한 또 하나의 환난이다. 이 영화를 보고 믿음이 약
한 사람들이나 혹은 이제 막 믿으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
한 애정을 떨쳐버릴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환난이 아닐
수 없다.
넷째로 성도들은 다빈치코드가 상영되는 시기를 만나 믿음을 한층 공고히
할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 사도는 소아시아 근방에 영지주의 대(大)이단의 바람이 불고 있을 때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철저히 믿으라고 경고했다(요이 1:7-8). 우리는
이런 영화가 상영되는 때에 믿음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
에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이 땅에 앞으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복음 전파
에 열을 올려야 할 것이며 이 땅이 정화되도록 수많은 기도를 드려야 할 것
이다.
믿음의 박차 가해야
1907년 평양의 부흥은 평양 거리의 기생집의 퇴출을 가져왔다. 우리는 그리
스도인의 무장을 하고 이런 세력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엡 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