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의 기본을 다시한번
김병곤 목사_천일교회
상가 건물 2층과 3층을 이용하여 예배당과 교육관으로 사용해 오고 있는데
얼마 전에 우리 교회당 바로 앞에 이웃 교회가 지하 1층 지상 3층의 예배당
을 세웠다. 이웃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왜 저렇게 교회가 있는 가까운 곳에
또 다른 교회를 세웠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고 지나간다.
나는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대답을 하면서 그들을 이해시킨
다.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혹은 갸웃거리면서 간다. 요즈음 목회
를 하면서 목회의 기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가와 목사에 대
한 책을 접하면서 느낀 점과 도전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의 목회를 한
번 되돌아보고 반성도 하게 되었다.
1. 자살 결심한 가가와
가가와(賀川豊彦:가가와 도요히코)은 어릴 때에 불우하게 자라났다. 청년시
절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만난 그는 남은 생애를 복음을 위해서 살
기로 결단하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몸이 건강치 못하여 신학
을 계속할 수 없었다.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학교에서
는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였고 교회에서도 그를 외
면하고 말았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가까이 하는 이가 없었다. 폐결핵 환자 옆에는 예수님
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
으니 혼자 외톨이가 되어 몸도 망가지고 신앙도 잃어버리게 되는 위기에 처
하게 되었다. 신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그는 삶까지도
포기하고 싶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영적 어둠에 빠진 그는 예수님마저도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느껴졌다. 예수
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가증스러운 사람으로 보였고 성경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자살을 결심하게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자살을 하기 직전에 나가노 목사
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나가노 목사님을 만
나보고 만약 그분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대해 주지 않으면 그때 스
스로 세상을 버리기로 하였다.
n2. 가가와가 찾은 나가노 목사
폐결핵으로 죽게 된 청년 가가와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텐트를 치고 예
배를 드리는 개척교회였다. 그가 만난 나가노 마끼 목사는 안수를 받은 후
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100킬로미터 이내에 단 한 명의 크리스
천도 없이 온갖 미신이 판을 치고 있던 곳을 찾아내서 텐트를 치고 개척교회
를 시작했던 것이다. 아내와 그의 품에 안긴 아이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개척교회가 무려 5년이 지나도 교인이 생기지 않았으나 나가노 목사
는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저녁 예배 시간에 마침내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가 바로 폐결
핵 환자 가가와이었다. 나가노 목사는 힘을 내어서 열심히 설교를 했다. 예
배 후에 나가노 목사는 청년과 함께 자기 집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
데 식사 도중 청년이 입에서 핏덩이를 토해 내었다.
나가노 목사는 마음속에 순간적인 갈등이 일어나 그 청년을 쫓아버릴까 생각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행주를 가져와 자기 손으로 청년이 각혈한 핏덩이
를 치웠다. 그리고 다시 상을 차린 뒤 청년과 함께 저녁 식사를 계속했다.
뿐만
아니라 목사님 부부는 청년을 자기 집에 데리고 살면서 가족처럼 극진
히 보살펴 주었다.
3. 빈민 사역에 투신한 가가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나가노 목사님 부부의 보살핌으로 감사하게도 폐
결핵에서 완치된 청년은 신학교에 복학하여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후에 그 유
명한 가가와 가가와(賀川豊彦)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고베와 도쿄에서 수
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다.
가가와 목사는 빈민촌에 들어가 가난한 빈민들을 위해서 섬기는 목사가 되었
다. 변비는 빈민의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인데 먹을 것이 없어 몇 끼씩 연
달아 굶을 경우 장에 남아 있던 변이 차돌처럼 굳어 이것이 항문에 걸려 배
변이 불가능하게 된다. 가가와 목사는 변비로 고통 받는 빈민들의 항문을 일
일이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다. 손가락으로는 뚫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항문
에 자기 입을 갖다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 빨아내기까
지 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가가와 목사님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
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배운 대로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토해 낸 폐결핵 핏덩
이를 닦아주
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해 주신 것이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
다.”
4. 중국에까지 복음 전해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간 가가와 목사는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
을 살았다. 장제스(장개석)총통의 부인인 쑹메이링(송미령) 여사는 크리스천
이었는데 가가와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고 가가와 목사를 모
셔다가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다. 아내를 통해 가가와 목사를 알
게 된 장개석 총통 역시 가가와 목사에 대해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지
니게 되었다.
1945년 마침내 패망한 일본군과 일본 민간인이 중국에서 철수할 때에 당시
중국 땅에 있던 일본 민간인의 수는 2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일본이 점령하였던 다른 여러 나가에서는 현지인들이 철수하는 일본인들
에게 테러를 가하는 사건이 빈번하였지만 중국에는 무려 200만 명의 일본인
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 대한 테러나 보복이 발생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장제스 총통이 중국 거주 일인들을 위해 내린 포고령 덕분이었
다. “일본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물자를
약탈하는 자는 극형에 처한다.”
장 총통이 일인들을 위해 이 같은 포고령을 내렸던 것은 가가와의 헌신적인
사역과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5. 때가 되면 열매 거둬
나가노 목사님은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아내어서 개척하여 5년이 지나도록
목회를 하면서 한 명의 크리스천밖에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의 목회가 실패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목회 성장 원리로 말이다.
하지만 가가와의 풍성한 사역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나가노 목사의 눈에 보
이지 않는 귀중한 사역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
지 못할 것이다.
교회가 없는 황무지와 같은 곳에 텐트를 치고 교회를 세우고 인내하면서 목
회하였던 나가노 목사의 개척정신과 버림받은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
람들의 눈에 보기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사
역을 귀하게 보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때가 되매 큰 열매를 거두셨던 것이
다.
그의 목회는 형편이 열악한 곳에서 개척을 하고 있는 목회자에게 큰 용기와
꿈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목회자의 목회 평가를 지금 당장에 나타
난 그 무엇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목회의 기본을 아는 사람은 현재
나타난 눈에 보이는 평가보다도 후일에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을 기대하면
서 목회의 기본에 충실할 것이다. 주어진 곳에서 인내와 충실함으로 주님의
양들을 목양해 나가는 것에 우리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나의 꿈을 실
현하기보다는 주님의 꿈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