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무한 상상력 발휘하자”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모든 인문과학을 해체시키고 있는 생물학의 견해에 따라 거짓도 동물세계의
연장인 폭력행위처럼 뇌질환일 수 있고 유전질환일 수 있다는 과학사상 자체
가 거짓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황우석 교수의 거짓은 이웃이나 국가에 끼
친 피해보다 자신에게 끼친 피해가 더 클 것 같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 엘
리트들은 공부만 잘하면 되고 웬만한 거짓은 눈감아 주는 한국의 부모들의 마
음과 사회 풍토가 얼마나 고쳐질지 궁금하다.
과연 거짓 풍토 고쳐질까?
전철이나 버스 안에 혹은 길거리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잃어버린 장소에 그
대로 있고 편지나 쪽지 하나라도 이사간 주인에게 정확하게 돌려지는 일이 언
제나 일어날지 머나 먼 이야기이다. 국민들 사이에 남의 실수가 삼켜지고, 남
의 말이 그대로 남의 말로 남아 있으며, 남의 공헌은 남의 공헌으로 돌려지
며, 남의 공덕이 자신의 공덕과 명확히
말이나 글에서 구별될지도 묘연하다.
나의 말이나 공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세계 안에 진정한 공헌자에게 돌려
가도록 긴 인내를 가지고 노력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 한낱
꿈일지 모른다. 그런 인내는 진정한 신적인 사실이 발견될 때까지 끝나지 않
을 것이다. 인간이 진정 체세포로 복제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영혼의 창조
와 함께 지금 여전히 인류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영구 미제로 남은 체세포 복제
1998년 제임스 톰슨과 죤 게하르트가 인간 배아줄기 세포주를 배양한 실험결
과를 발표한 이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 세포주를 만들어 인간도 단순히 정보
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는 지금 적어도 실패하였다. 물론 Science 편
집인들이 2004년, 2005년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의 최종 수락 과정에서 최소
한 톰슨이나 게하르트의 최초 논문 수준들의 검증자료들(사용된 시료들의 회
사명, 실험쥐에 대한 정보, 검사 장비에 대한 정보)과 결정적 사진들(세포표
면표식들의 변화사진, 염색체 텔로메레의 길이분석사진 등)을 요구하였다면
그런 거짓을 걸러내면서도 진정한 사실을 발견케 하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치병을 위해서 난자기증운동의 윤리성 문제와 상관없이 이미 세계의
유명병원들이나 대한적십자사는 성체줄기세포(조혈모세포)의 기증운동을 해왔
기 때문에 난치병을 위한 배아줄기 세포주를 만드는 일은 일반적인 병원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윤리는 과학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실들을 더 존중하는 것
이다. 암이나 불치병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의식적 자아 이외 다른 자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리고 한 세포의 단
백질들 사이의 정보들의 네트워크는 인간에 의해서 조작되기에는 너무나 복잡
하다.
그래서 인간의 불치병들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자연 이해에 대한 실수 가능성
을 적게 하기 위해서 DNA 검증 외에 (배아)줄기세포들의 각 종 표식들과 연구
의 중심주제인 텔로메레의 길이(성체세포 염색체의 그것 보다 4-6배 커야한
다) 및 배아줄기세포들이나 그 세포들이 각 종 체세포들로 분화하는 첫 유도
인자들(cdx2 등)을 우선 발견하는데 노력하는 것이다.
세포 정보 규명 쉽지 않아
우리의 판명성의 오류에 따라 번역된 수일지라도, 실제 자연을
움직이는 정보
로서 수란 이미 알려진 허수가 아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허수일 가능성이 높
고 자연적 정보함수의 자연수도 1과 0 사이 1과 2 사이 등의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일정한 수이다. 그런 자연수를 발견하는 일을 하도록 신학은 과학활동
을 돕기를 원한다.
시험보다 더 큰 사회적 가치는 교사의 사랑과 창조적 활동일 것이다. 교사들
은 자라는 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달고 진정한 자연을 향하여 나를 수 있
도록 도와야 한다. 정보화시대의 이름으로 기업이나 국가가 자라는 자들의 상
상력을 주도하면 더욱 더 한 시대의 상상력의 도구에 자녀들의 상상력을 매이
도록 하는 것이요 그것은 자녀들에게 공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병든
상상력이 자라갈 때, 자연을 파괴하고 자신을 파괴하면 이웃을 파괴한다.
창조적 활동 권장해야
아마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에 의해서 상상할 수 없는
그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런 자유를 더 확대하는 가장 먼 가치일 것이
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그런 자유에 대한 보증을 의미할 것이다. 하나
님 안에서만 무한한 상상력을 펼 수 있고 진정한 자유를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신 모든 것들이 우리 자신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
유롭게 하는 것이요 그가 명령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받은 은
택들을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한 은혜의 형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