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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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람

정창균 목사_합신교수

사람은 다른 짐승들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단순히 배가 부른 것만 가지고는 
만족하며 살 수 없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사람이 살면서 배부르고 등 따뜻
하면 된다”고 말씀하곤 하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다 보니 배부
르게 한번 먹어보고, 따뜻한 구들장에 등 붙이고 맘 편하게 한번 자보는 것
이 소원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찢어지는 가난으로 춥고 배고픈 설움이 한이 맺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도, 사람은 입에 들어가는 것만 가지고는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그 분
네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긋지긋한 가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더 가난하게 살 것을 각오하면서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가르치는 일을 그렇
게 힘썼던 것입니다. 사람은 사는 보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
다. 

자식 하나 잘 키우는 것이 부모 된 보람이라고 그 어른들은 믿고 있었기 때문
에 그 보람을 위하여 그 가난과 그 고생을 선뜻 택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는 보람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살아 온 보람이 있어야 
하고, 앞을 내다보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의 보람이 내다보여야 합니
다. 

보람 중에 가장 큰 보람은 사람을 키우는 보람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사람
을 키우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되자 그 소원이 더 절실하여졌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그것이 저의 목회 철학이 되었습니다. 사실, 목회자가 된
다는 것은 사람을 돌보고 키우는 일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키우는 것은 애틋한 사랑과, 수시로 안부를 물어주는 깊은 관
심과,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하는 자상함만으로는 부족하였습니다. 때로는 당
장의 필요를 채워주고, 때로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대신 부담해주고, 
때로는 함께 맛있는 것을 사먹고, 따뜻한 것을 사 입히며 정을 나누기도 해
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돈이 있어야 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
서 언제부터인가 이 일을 위하여 따로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제 주위의 여러 사람이 여러 모습으로 그 돈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모두 합하면 꽤 
많은 액수가 될 것입니다. 저의 
작은 누님이 여러 해 전에 이 계좌에 매월 몇 만원씩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막동이 동생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도 매월 그 돈을 넣어주었
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강의를 하고 돈이 생기면 일정액을 떼어서 이 계좌
에 넣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비자금 계좌입니다. 저는 이 비자금 계좌가 두둑
히 모아져 있으면 신바람이 나서 누군가 등 뒤에서 한번 밀어주면 힘을 얻고 
자라 갈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찾습니다. 

서너 주 전에는 어느 교인이 주더라며 아내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열어보니 만 원짜리 지폐가 상당히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왠일인가 하여 봉
투 앞뒤를 다시 보았습니다. 

봉투 앞면에 또박또박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재량껏 사용해주십시요.” 알고보니 그 분은 이 돈을 벌기 위하여 한 달 동
안 막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였다 하였습니다.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그분
은 그런 힘든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처지에 있는 분이었기 때문입니
다. 5-6개월 전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막노동을 하
고 나니, 
더 이상 했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그만두었고,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제게 전해온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핑돌았습니
다.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나가서 떠온 물을 받아들고 세 용사의 피와 같은 물이
라며 감격 속에 그냥 여호와 하나님께 부어드리던 다윗을 생각하며, 조금 더 
모아지면 정말 값있게 누군가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이 돈을 쓰려고 보
물 상자에 넣듯이 저의 비자금 계좌에 넣어두었습니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감동이 통하는 사람과 같이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고난과 환난을 무릅쓰면서도,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사람 하나 키워보려
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정성을 쏟아 부었던 사도 바울이 여러 해 후에 놀
랍게 믿음이 커버린 그들의 모습을 전해 들으며 그렇게 감격스러워 했던 모습
을 저는 자주자주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마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는 소년
처럼 저는 바울의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들은 우리 주님이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나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
랑스런 면류관입니다”(살전 2:19-20). 당신
들은 나의 보람! 바울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르르- 바울의 얼굴을 흘러내리는 보람과 감격
의 눈물을 눈에 선하게 봅니다.

보람 중에 가장 큰 보람은 사람 키우는 보람입니다. 교회들이, 그리고 신자들
이 다른 일 보다도 사람을 키우는 일에 더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