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재앙은 하나님 없이 사는 것”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지금까지 이론에 불과하였던 물질현상들에 대해 한국 과학자들에 의해서 처
음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건들이 최근 보고되었다. 플라스틱과 같은 물질에서
도 전기가 통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처럼 모트 금속-절연체에 전기
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전기나 물리현상에 대한 다른 새로운 이해와 이론들
이 흘러나올 수 있는 경이로운 발견이다.
계속 발전하고 있는 과학 이론들
역시 다른 한국 과학자들이 나노튜브 전기발전기 개발과 같은 세계적 경쟁상
태에 있는 나노기술 연구의 부산물로 지금까지 알려진 빙점보다 높은 온도에
서 나노거리에서 고체가 될 수 있는 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함으로 빙점의
개념이 바꾸어지고 있다.
이런 발견들은 물질이나 물질현상이 모두 정보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층
더 증명하고 있다. 어떻든 새로운 발견들은 과거의 노벨상을 받은 비가역적
과학적 사실들
처럼 과학문명과 문화를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부정할 수 없
는 사실로 공유될 때 의미가 있다. 한 나라의 국력이나 행복지수도 그렇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에 의해서 이웃과 인류의 삶에 유익케 함으로 자라간다.
인류의 삶에 유익되어야
국가의 위기나 인류의 위기는 사람들이 예측된 내용에 의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의 지금의 재난을 인재라고 하는 것은 엔트로피
가 서서히 증가해 감으로 생긴 지구 온난화의 필연적 현상들에 대한 과학자
들의 경고들을 사람이 듣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런 경고에 의하면 먼 미래
해수면이 높아지고 바다의 온도가 조금씩 상승함으로 지면에 미치는 영향들
을 대비해서 도시가 지하에 건설되어야 하는 대비도 해야 할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대비하면 지상 1m이상이 물에 잠기게 될 경우를 가정하여 지하주
거환경을 위해서 발전시킨 기술들을 이용해 지상을 모두 자연 숲으로 만드
는 기술로 발전시키는 등 새로운 친환경자원과 기술로 계발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찾아오는 것이 에너지 위기이다.
에너지 위기에 봉착한 지구촌
이 위
기를 대비해서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독일처럼 가정의 에너지원을 전
기 에너지원이나 기타 다른 에너지원(친환경에너지원 등)으로 바꾸는 것도
큰 대비일 수 있다. 남아공이나 불란서처럼 공기에너지 엔진개발도 농부, 어
부, 산업활동, 국토개발, 교통, 국방 등 국민의 기초생활의 마비로 인한 총
체적 위기 앞에 큰 대안도 될 수 있다.
이웃인 중국도 친환경 에너지원 개발 이외에도 로켓기술을 전용한 과산화수
소 자동차 개발에 한발 앞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러 대체 에너지원 개
발 이외에도 외부 에너지 공급이 없이도 대량의 전기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
해 낼 수 있는 발전기의 개발로 그 대비가 완료되었다고 판단된다. 그와 같
은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너무 큰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생존
을 위해서 중소형 새로운 핵연료 에너지원 개발이 추진될지도 모른다.
세계는 지금 에너지 개발 전쟁 중
그러나 그런 대비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들을 파괴한다면 그로 인한 인간성 자체의 파괴는 인류에게 더
큰 짊이 될 것이다. 사실 인간인자들은 개발을 늦추기도 하고 모
든 지구환경
들을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시킬 수 있다.
전쟁이나 자연의 재난 시 식량공급을 위해서 국토에 모든 나무를 과일나무
로 바꾸는 운동이나 미래 인구감소로 인한 출산운동, 국민건강을 위한 금연
운동 등이 그런 예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인자로서 실수하지 않고 분명
한 색을 좋아하며 정직하게 사는 것,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서 싸우는 것
도 인간에게 행복일 수 있다.
진정한 가치 추구할 권리 병행돼야
좋은 법이란 그런 행복추구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무
거운 세금을 받고자 하면 할수록 그런 보장에 대한 의무를 지는 것이다. 종
교개혁 시대에 양심의 자유라는 개념이 발견되었을 때, 어떤 법이나 권세로
부터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가치를 추구하고 높은 가치를 소유하며 누
리되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가치까지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였
다. 영혼이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높은 선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
도 그것을 발휘하는데 방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자유자는 제후, 왕, 군주, 칼, 법이 필요로 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세
속적 권세에 복종하는
것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자유였고 하나님의
선물들을 우리에게 주신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자유였으며 그런 자유들은 양
심에서 절제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런 자유를 파괴하는 속박이 어떤 위기나 재난보다 더 큰
위기요 가장 큰 재난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자유로운 기억, 하나
님이 없는 자유로운 행위, 하나님이 없는 양심의 자유는 그 자체로 이미 재
난임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