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양식을 거두어 주옵시고_ 이은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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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양식을 거두어 주옵시고

이은상 목사/ 동락교회

잠잘 때나, 일할 때나, 뭘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특히 혼자 있을 때 늘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존재는 필경 나의 마지막 숨결이 잦아들 때까지 
단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 존재가 바로 양심입니다. 

그러나 이 내적 존재가 외적존재를 너무 사랑하는 사회 속에서 이제 귀찮은 존재가 되
어 버렸습니다. 아니 사람들은 고귀한 이 생의 동반자를 속이거나 달램으로서 침묵케 
하고 심지어 아예 죽여 없애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양심은 악의 경계병으로 때로는 
선의 공격수로 그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들의 내적인 삶과 더불어 외적인 삶, 그리
고 개인의 삶과 사회공동체의 윤택한 삶을 위해 책임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양심이 똘똘 뭉친 이기주의 앞에서 기세 등등한 실리주의 앞에서 존재의 위기
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겹겹의 감시망을 뚫고 식탁에 오른 쓰레기 만두, 보행자를 돕
기 위
한 정지선을 넘어선 궁둥이 차량들,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가족과 친구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문화와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는 
신체건강한 사람들, 심지어 이러한 생활뉴스의 진위를 왈가왈부해야 하는 현실은 양심
을 잃어버린 결과들일 것입니다. 물론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양심을 잃어
버린 사회를 보고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교회는 상황만 묘사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상태의 원인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
다. 

먼저, 양심이 위협받게 된 원인에는 공공의 책임이 있겠지만 특히 정치지도자들에게 
그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적절한 이유도 없이 단지 정당과 자신의 이익만으로도 생각
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그들의 행동은 국민들의 정직과 성실과 원칙에 대한 믿음을 
빼앗게 된 것입니다. 정부에 대한 냉소주의는 결국 개인의 양심에도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사회가 일반적으로 도덕적 기준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
에서 불편하
게 양심 따위에 얽매여 귀중한 실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생의 철학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놀랄만한 도덕적 파괴를 보고도 ‘그럴 만두 하지’ 지나쳐 버립니
다. 특히 겉의 이미지의 손상에는 생명을 내걸지만 언제나 범행 현장에 동행하게 마련
인 자신의 양심에게는 무관심한 세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심파
괴의 원인 중 가장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양심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의 타락
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역사는 교회갱신이 사회갱신을 견인해왔다는 사실을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참된 부흥의 시기에는 언제나 사회가 건강했으며 그
러므로 사회의 타락은 교회의 무능함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심을 회복하기 위한 치유책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법과 교육을 강화해
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이미 시도된
바 있지만 전반적인 상태는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양심의 회복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선한 양심의 소유자들이 
각자가 속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은사를 통해서 양심을 지키는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도덕은 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종 식료품 가게에도, 식품검사를 담당하는 기관에도, 이러한 법을 제정하
고 집행하는 정부나 국회에도 올바른 양심을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이 정계로 학계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누
룩과 같이 영향을 미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 ‘우리에게 불량한 양식을 거두어 주옵소서, 다만 교통법규 위반 스티커에 
빠지지 않게 해주옵소서’라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이 악한 세대의 구원을 위하
여, 사회갱신을 위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적극적인 자세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