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미래를 결정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김영규 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기독교는 인간의 욕심이나 명예 혹은 이상을 우상화하여 섬기는 주술종교도
아니요 인간의 윤리나 정의를 신격화하여 섬기는 합리적 종교도 아니며 인간
의 저항정신을 신격화시켜 섬기는 저항적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
교이다. 자연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된 자연 안에 그의 사랑의 대상을 두시며
그 대상을 위하여 창조자 자신을 선물로 주시는 그런 역사적 계시종교이다.
오히려 그 창조자는 그의 사랑의 대상을 만드시기 전에 대상에 대해서 사랑
의 내용과 은혜의 내용을 정하시사 창조를 통해서 그의 사랑하는 대상을 위
한 사랑과 은혜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처음 보여 주신 것이다. 피조물 안에 있
는 자율적 독립성이나 의지의 자유성은 그런 은혜의 내용이 얼마나 특별한 형
식을 취하여 주여지는 지에 대한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인간의 안식의 처소인 자연의 창조도 그의 사랑과 은혜의 내용의 시작
에 불과하고 창조와 같은 능력으로 더 높은 가치로 보존되고 통치되고 있는
것이 우주와 인류의 역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무로부터 존재하였지만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향하여 가까이 오시며 오실 수록 점점 스스로 그로부
터 멀어져 가게 하는 인간의 죄나 그로 인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넘어지는 많
은 인간의 역사의 내용, 즉 속임과 고통, 노동과 죽음 등은 아직도 계속된 은
혜와 사랑의 수단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향하여 가치로 요구하시는 것은 그렇게 사
랑하시는 그 하나님이 그에게 생명을 주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으로서 알
고 그가 원하시는 가치와 수준으로 인간이 창조되고 재창조됨으로 더 높은 은
혜의 내용을 누리는데 있다. 인격체를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상급으로
자신을 인간에게 주어지는 방식은 자신으로부터 타락한 인간의 모든 짐을 지
시고 그가 미처 선물로 깨닫지 못하는 모든 것을 선물로 준비하시며 그가 인
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역사하심으로 주시는 방식이다. 그런 은혜의 방식 앞
에 우리의 수준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을 먹고 사는 독특한 삶으로
초대되어 나그네로 살도록 초대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가치를 기대
하지도 않고 모방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민족단체나, 민중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는 자선단
체나, 세상가치를 위해서 거리 앞에 그리고 국회 앞에 시위하는 운동단체도
아니다. 조그만 가치를 위해 생명을 걸고 있는 관원들이나 그들과 거의 동일
한 가치를 위해서 관원들과 충돌하여 시위하는 군중이나 똑같이 좋은 가치를
생산할 만한 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들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만이 그렇게 긍
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아무리 진홍같은 붉은 죄를 범한 자들도 진정으
로 용서할 수 있고 아무리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도 예리하게 비판할 수 있
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을 죽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다만 관원들과 국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양심 앞에 자유로운 자
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 법을 지키는 것이나 법을 만드는 양심의 자유를 꺾
을 수 없을 때 나라 안에 선과 평화가 정착이 된다. 대화와 토론은 문제를 해
결하는 창조적 직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일에는 결단의 시기가 있고 그
처리는 신속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무관심과 무기력, 다수의 횡포 그리
고 이어지는 폭력 앞에 히틀러 시대나 레닌의 시대를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거시적 안목을 갖기를 바란다. 모두가 이런 위기를 통해서 개인의 미
래보다 국가의 미래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는데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
다. 민주주의 제도는 희랍의 자유도시국가의 정치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고 탄
핵소추는 영국에서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하였을 때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새로
운 것이 아니다.
국민이나 관원이나 의회가 공정한 법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지금의 시점에서
그 법 결정의 공정성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다만 법은 약자에게만 공의
가 실천되고 강자에게 공의가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예언
이 가능하다면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모두가 미래를 결정하신 하나
님을 두려워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