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이은상/ 동락교회
‘합신’ 동기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임인도자의 요구에 따라 서로의 근
황을 묻다 누군가 ‘왜 담임목사들 근황만 묻고 부목사들은 묻지 않는가?’라
고 재미 반 의미 반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에 대한 답이 시간관계상이라
지만 거기에는 혹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숨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단 동기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업무에
시달리는 부교역자, 가정목회에 충실한 자, 월요일마저 심방가시는 열성목회
자, 건강상 이유가 있는 자, 동기모임 정체를 부정하는 자들은 나오기가 힘
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저런 마땅한 이유도 없이 불참하는 자들은 왜 못
나올까요? 혹시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 이렇다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요? 다른 동기처럼 화끈하게 개척도 못하고, 혹 개척을 했더라도 부흥하지 못
하고, 섬기는 교회에서도 변
변치 못하고 한마디로 업적이 없는 그 부끄러움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의문을 가지
게 된 것은 저 개인스스로 그런 외형적인 것들로 인해서 마음이 아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척초기에는 ‘몇 명이 모이느냐’를
가지고 내면세계가 불안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변에 잘 꾸며진 예배당
을 보거나 혹은 헌신된 이웃 교회 성도들을 보노라면 ‘나는 언제나 저러나’하
며 좌절감을 느끼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출발점은 같은데 현재의 지점이 다
를 때 느끼는 비교의식과 그로 인한 열등감은 하나님 존전에서 기도하고 있
을 때(ing) 외에는 늘 목회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가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코메
디언 이주일씨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뒤뚱거리는 오리걸음과 어눌한
말투, 엉거주춤한 행동거지, 그리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라는 그가 남긴
유행어는 어쩌면 외형만 추구하려는 저의 내면세계에 던져진 다윗의 물맷돌이
었습니다. 뒤뚱거리거나 어눌하거나 엉거주춤하거나 못생기면 안된다
는 강박
관념, 즉 세대를 넘어선 외형 지상주의, 이것이 바로 동기모임을 작게 만들
고 목회현장을 슬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다투게 하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한 칼럼리스트는 ‘루키즘(Lookism)’이란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한다
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루키즘이란 이른바 외모지상주의인데 사전적 의미
로 ‘인종, 종교, 성, 이념 등과 함께 외모를 근거로 한 편견이나 차별’로 정
의합니다. 이 루키즘은 특히 겉치레를 중시하는 우리사회에서는 잘난 외모는
경외의 대상이 되고 못난 외모는 공연히 비하의 대상이 되는 극단적인 결과
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야 노골적으로 ‘용모단정’한 구인조건 같은 것을 내걸지 않지만 그
러나 외형을 성공의 잣대로 보는 경우는 사회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세
미나 강사나 강단의 설교자를 모시는 경우 일단 교인의 숫자를 중요시 여기
는 경향, 떠도는 교인들 역시 상가교회보다 큰 예배당을 찾는 경우, 교회의
지체를 찾더라도 새끼발가락보다 알통 나온 팔뚝을 찾으려는 열망들은 루키즘
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기모임, 노회나 시찰회,
제직회, 청년들의 그룹모임, 그 외에 주일학교의
분반모임까지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이라면 외형적으로 은근히 잘 나
가는 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매일같이 ‘나 어떻게’와 ‘홀로서기’를 읊어대
는 못난 자(?)들도 한다리 끼는 모임이 되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은 세
상말로 호빵맨이든 숏다리든 주안에서 모두가 다 귀하고 복된 존재라고 말합
니다. 여러 가지 외모로 자랑삼지 않는 교회, 이 문제로 예수님은 평생토록
바리새인들과 싸우시고 그들의 요구불이행죄로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하셨습니다.
요즈음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폼잡는 사람과
속으로 폼 잡는 사람. 아직도 그 외모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
질을 낭비하고 있는지요? 성공, 인기, 재물, 미모, 학력… 더 많은 프로그
램, 더 좋은, 더 큰…. 현실적으로 그 유혹과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
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권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
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 우리의 안목이 죄에 인이
박여 무디어져 있는 한 외모는 겉가
죽에 불과한 것입니다. 못생겨도 존귀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