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소요사태를 바라보며
< 김재원 선교사, 합신세계선교회(PMS) >
태국은 1932년 쿠테타 발생으로 절대왕정이 막을 내리고 입헌군주제가 시작
된 후, 입헌군주적 민주주의가 발전되어왔다. 그 후 최근의 쿠테타를 포함해
서 총 19번의 쿠테타가 일어났고, 19번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태국 민주주
의 발전사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어왔다.
이번 태국 사태의 배경이 되는 쿠테타는 2006년 9월 17일에 발생했다. 군부
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축출이라는 명분을 걸고 탁신의 외국 순방기간 중
에 쿠테타를 일으켜, 왕가의 쿠테타 개입이라는 의혹(보통 쿠테타를 성공해
도 왕의 허락이 있기 까지는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정상인
데, 그때는 2시간도 되지 않아서 성명이 발표되었다)에도 불구하고 쿠테타
를 성공시킨다.
그러나 군부는 쿠테타 성공 후 탁신의 정치 세력을 해체시키고 총선을 실시
하였음에도 친 탁신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재집권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왕당파(왕실, 군부, 기득권층)측 옐로우셔츠 시위대는
사막 정권(그 당시 총리) 실각을 목적으로 수완나품 국제공항 점거 농성까
지 일으키며 시위하여 사막 내각을 사퇴시키고 친 왕당파(민주당, 아피싯 웨
차치와 총리)가 집권한다.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과 대법원이 탁신의 개인 재산을 50%가량 몰수한 사
건이 더하여져 레드셔츠라고 불리는 친 탁신 세력의 시위가 시작된다. 왕권
및 기득권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만한 정부가 있을시 군부가 항상 개입해
왔다는 사실은 태국이 여전히 민주주의 정치 후진국임을 말해주고 있다.
2010년 3월의 전반기에 10만의 친 탁신 세력이 붉은 옷을 입고 일으킨 이 시
위는 5월 19일 태국 지도부의 본격 진압 작전으로 자진 해산되기까지 2,000
여명의 사상자(80여명의 사망자 포함) 발생과 시위의 지방 분산이라는 결과
를 가져왔다.
시위대 지도부의 자진 항복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분노한 레드셔츠가 사이
암 영화관, 센트럴 월드 백화점 등을 불태운 사건이 말해주듯 현재의 소강상
태는 근본적 문제 해결의 결과가 아닌 더 큰 폭탄이 수면 아래 잠재되어 있
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이암 영화관이 전소되어 앞으로 친구들과 어디서 놀아야할지 생각해봐야겠
다는 한 태국 대학생의 인터뷰를 통해 일부 젊은이들의 사고를 들여다보게
된다. 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잘못된 것을 고치
기 위해 함께 참여하여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보다는 개인의 유익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아마도 일반적인 태국의 대학생들은 부유층 자녀들이기에 그러한 반응을 보
이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결과는 태국인들 마음의 깊은 골과, 정
치권을 향한 강한 불신, 그리고 시한폭탄과 같은 현 상황에 대한 불안함일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태국의 상황은 선교적 전망 역시 힘들게
한다. 향후 태국 선교의 방향에 대한 선교사들의 의견도 여러 가지로 분분
한 실정이다.
왕당파가 정권을 계속 유지한다면 현재 주어진 기독교 선교의 자유 역시 계
속 보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혹 급진적 민주주의 세력이 집권하게 될 경우에
는 상당한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어려움
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정치적 혼란은 곧 선교에도 상당한 혼란을 초래
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많은 중보기도가 요청된다.
태국에 보다 민주적이고 공평한 정권이 들어서고 태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
의 상처가 치유되며, 문의 열리고 닫힘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정치
적 상황에서든 태국 선교의 문을 계속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