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에 담긴 복과 저주_손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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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에 담긴 복과 저주

손성은 목사_삼일교회

사순절 기간의 마지막 주일을 ‘종려주일’이라 하고, 그 주간을 가리켜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입성 알리는 ‘호산나’

종려주일이라 함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시는 사건
을 기록할 때에 백성들이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환영하였다고 하는 말에서 기
원합니다. 
이 종려주일에 그 백성들이 외치기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 12:13) 하였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 ‘호산나’라고 찬
양했던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면서 고함을 
질렀을까 하는 것은 참으로 의아스럽습니다. 
혹 찬양했던 이들이 못박게 해달라고 고함을 질렀던 사람들과 달랐다고 한다
면 최소한 왜 그들은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고함을 지를 바로 
그 때에 침묵하고 있었는지 당황스럽습니다. 그 
힌트가 누가복음의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누가는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눅 19:37) 찬양하였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찬양한 것은 예수님이 행한 능력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바뀐 세상을 보겠다고 하는 기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죽으심을 바라보고 있습
니다.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십자가 없는 승리와 정복을 바라보
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
까?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예수에
게 잘못된 기대를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당한 기대를 배
신한 예수가 미웠고 증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되 예수께서 바라보았던 그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은 채로 
믿는다 하면 우리 역시 ‘예수를 못박게 하소서’라고 고함을 치게 될 사람
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기적의 목적과 의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흥분하는 사람
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
런 사람들이 요즘에도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호산나”라고 찬양하였다면 저주와 죽음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것
이 바로 나의 죄의 대속을 위한 것인 줄을 알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죄와 허물과 추함을 씻어주시고 용서하시기 위
함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을 발견하며 감사하며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십자가예 참예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각오와 결심이 없으면서 “호산나”라고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의 ‘저
주’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예수님과 그 복음을 배신하고 저버리며 돌
아서 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니다. ‘호산나’가 진정한 ‘호산나’가 되
게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세상의 개선 장군처럼 말을 타고 들어가신 것이 아니고 바로 나귀를 타고 가
셨다는 것입니다. 왕은 왕이되 평화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왕은 왕인데 섬기
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
서가 아니라 서로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종
려주일에 우리가 적용해야 할 메세지입니다. 

기꺼이 십자가 고난 함께 받아야

십자가의 고난에 참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고난주간의 묵상이 바로 
이러하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의 한 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