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나의 문화생활_김영자 사모

0
7

실종된 나의 문화생활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5천원으로 5만원 어치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비결”

거실의 한 쪽에 놓아둔 화분에서 보랏빛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천리향이 향
기를 집안 가득하게 채우는 봄입니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봄을 맞으려고 여행길에 나서고 있습니다. 

봄꽃 소식 벌써 서산까지 올라와

며칠 전 시찰회 모임을 갖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사모님들도 초대하여 좋은 
시간을 마련해 주어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영화도 관람했습니다. 영화는 얼
마 전 개봉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워낭 소리’였습니다. 팔순 농부
와 마흔 살 소 사이에 맺어진 삶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영화
였습니다. 
영화를 같이 관람한 사모님들은 제가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즐거워했습
니다. 어느 사모님은 그 영화에 담긴 내용도 중요하지만 맛있는 점심과 영화
를 관람했다는 사실 때문에 즐거워하면서 오랜만에 문화생활
을 누렸다고 행
복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1일 생활 권이 되었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
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은 생활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문화
를 이해하는 것도 다를 것입니다. 나의 경우 도시 생활에 익숙하여 농촌에
서 생활하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여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많이 있습니
다. 
지금은 농사를 대부분 기계로 짓지만 전에 사람의 손을 빌려 모를 심고 거
둘 때는 시골학교에서는 작은 손이라도 집안일을 도와주라고 농번기를 정하
여 며칠 간 학교수업을 쉬기도 했습니다. 또 처음 초등학교 교사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써레질’을 몰라서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가르쳤으나, 반
대로 도시 경험이 적었던 시절의 농촌 아이들을 교육 시킬 때는 지하도와 육
교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괘도를 가지고 이해시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문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 우리들의 오감이 더 쾌락적이고 즐거운 
것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오래 전 3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학교에서 자유학습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에 가서 송사리를 잡
고 겨
울의 난방을 위해 산에 올라가 솔방울을 줍던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오늘날 부유함 속에서 빈곤을 느끼는 시대에 영화 한 편을 보고 행복을 느꼈
다는 사모님의 순수한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도 웬일인지 모르게 가슴
이 찡하게 저려옵니다. 
총동문회 때 자녀와 함께 참석했던 어느 사모님은 교회 사택은 난방이 잘 되
어 있지 않아서 춥고 샤워도 집에서는 할 수 없는데 아이가 너무나 좋아한다
고 했습니다.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는 것처럼 문화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도 문화의 빈곤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도시 문화에 익숙했던 나 역시 모든 것들이 생소하고 낯설은 시골 생활에서 
깊은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면서 외롭고 때로는 고독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
끔 볼 일이 있어 서울에 갈 때 남편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타조는 좋아하
는 붉은 클로버를 보면 눈이 돌아간다는데 당신은 서울에 가까이 오면 눈에
서 빛이 나고 목소리에 생기가 난다”고 놀리곤 합니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가면 계획
했던 것과는 달리 오감을 즐겁게 하기 보다는 
생활을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맙니다.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있으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자투리 천을 사기도 하고 아름다운 
가게를 찾아 작은 돈으로 몇 권의 책과 옷도 골라 봅니다. 호사를 부리며 인
사동의 화방을 기웃거려도 보지만 항상 아쉬움만 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파김치가 되어 아쉬움뿐이고 초라하며 궁상맞은 자신에게 화
가 났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계절이 바뀔 때 싸게 구입한 자투리 천을 이용하여 재봉틀로 커튼을 만들어 
요리 조리 걸쳐 보며 즐거워하면서 누려 보고 싶었던 도회지의 꿈을 상쇄시
키며 조금 서투르고 엉성하게 보이지만 작품(?)이라 생각하며 자족하며 즐거
워합니다. 때로는 생활의 이질감으로 외로움을 느낄 때 산책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풀숲에 숨어 핀 이름 모르는 작은 꽃의 신비로움에 감격을 하면서 즐
거워합니다. 
농촌에 살면서 도회지 것을 가끔씩 그리워하는 것은 동료들과의 만남에서 그
들에게 소외되거나 퇴보된 삶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있었
나 봅니다. 문화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도회지의 사람들은 그들의 지친 삶에
서 쉼을 얻으려고 도시를 떠나 산으로 바다로 쉴 곳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
고 시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도회지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공기와 자연을 
마음껏 누리면서 도시의 편리한 생활 대신에 시골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면서
도 불편 없이 나름대로 생활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 것을 부러워 합니다. 
우리는 꽃 시장에 나가 꽃을 사지 않고 시장의 채소전에서 봄나물을 사지 않
고도 밭에 심을 채소의 모종을 하우스 속에서 기르면서, 그리고 둑에 돋아
난 쑥과 냉이 달래를 밥상에 올리면서 행복해 하며 갈증 난 문화를 잊어버립
니다. 축구나 야구의 경기를 보기위해 운동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함
성을 지르지 못하지만 텔레비전 앞에서 승리의 기쁨도 나누고 패배의 아쉬움
도 전달받고 있으면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생활에 민감하지 못한 남
편은 남편대로 가끔씩 바둑을 즐기는 동료들과 모여 담소를 나누며 회포를 
풀기도 하면서 문화적인 갈증을 해소하기도 합니다. 
꽃샘추위로 인하여 꽃나무들의 꽃피움이 잠시 주춤하여 미루어졌지만 곧 온 
세상이 꽃구름과 꽃 대궐 속의 터널 속에 빠
져 들면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다 아름다워 세상을 지으신 분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지 위에 
핀 수많은 아름다운 꽃과 풀들로 인하여 행복해 할 것입니다. 
가끔씩 물 속에 있으면서 목말라 하는 어리석음과 같이 오감을 즐겁게 해주
는 자연 앞에서도 연극과 영화를 관람한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며 남편에게 
투정을 부려 보기도 했습니다. 

행복은 작은 발견으로부터 시작해

매화 꽃이 활짝 핀 남쪽을 그리워하며 후리지아 한 묶음을 사는 나에게 곱
지 않는 눈길을 주는 남편에게 “5000원으로 50000원 어치의 행복을 느낄 
것”이라며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봄의 문턱에서 내게서 실종된 문화생활을 
누려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