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를 아십니까?_최태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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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를 아십니까? 

최태호목사_전북노회장, 군산우리교회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의 태어남에 대한 의미가 가정에서의 의미와 
국가 또는 지자체에서의 의미가 조금은 다르다고 봅니다. 가정에서의 의미
는 사랑과 축복의 열매요, 소망 그 자체입니다. 국가 또는 지자체에서의 의
미는 인구 1인의 증가 정도로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늘어만 가는 고아들과 편부모 자녀들

태어난 아이는 성장해 가면서 많은 변고를 겪기도 합니다. 요셉을 봅시다. 
한 아이가 느닷없이 노예로 팔려갑니다.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상황입
니다. 국가 또는 지자체에서의 반응은 잘 알 수 없지만 아버지 야곱의 고통
은 표현키 어려울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망하여 포로의 몸으로 사로잡혀 있
는 다니엘의 상황에서도 그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들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
을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고아들이나 편부모 슬하의 자녀들 또는 나이 어린 가장의 고통
스런 생활의 아
픔들에 대해 함께 감당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합
니다. 성경의 곳곳에서는 고아와 편모(과부)의 아픔을 지적하여 언급하고 있
기 때문입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편부모나 고아들이 잘 성장한 사례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례
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면 얼마
든지 그와같은 경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체된 가정과 그 아이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아가 되었고 편부모
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사회나 이웃의 시선은 늘 차갑기만 합
니다. 혹시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사뭇 염려가 큽니
다. 내 아이만 잘되기를 기도하는 그 기도를 과연 하나님께서 응답하실지 궁
금합니다.
비록 고아와 편부모 자녀가 되었지만 얼마 후 그들을 통해 온 세계에 영향
을 주어 구원의 손길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정
녕 우리에게는 없을까요? 그 아이들을 통해 온 땅에 복음의 복된 길을 전파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볼 줄 아는 선견자가 이 시
대에 없다는 말인가요?
요셉과 같이 어린 노예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
길을 보았던 믿음 없는 이방인
의 안목보다도, 다니엘과 같이 어린 포로이지만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 믿음 없는 이방인의 지혜보다도 이 시대의 성도요 부모
된 우리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고아와 편모의 자녀를 방관한다면 훗날 우리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고아와 편
모의 자녀들일지라도 머지않아 큰 빛을 드러내는 인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우리 성도들은 지혜롭게 그리고 교회에서 조직적으로 고아나 편부모의 
자녀들을 감싸 안으며 그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
여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사회가 이들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을 내놓
지 못하고 등한시 여기고 있을 때 교회가 먼저 나서서 이들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고아와 과부(편부모)를 불쌍히 여기
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참된 복음 전도와 선교는 외형적 성과를 결코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
려 참된 복음 전도와 선
교는 우리를 희생하고서라도, 우리가 어려움을 감당
하고서라도 우리 주변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그리고 누구보다도 고아나 
편부모 자녀들을 위해 소리없이 감싸 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