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신비_이은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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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신비 

이은두 목사_전남노회장, 미삼교회 

하나님의 작품인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일
란성 쌍둥이도 서로 다르고, 한 개의 오렌지 안에 있는 여러 조각의 과육도 
서로 그 맛이 다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

형제 사이도 서로 다르고, 부부도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
람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교육받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성도간에는 그 다름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교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어도 제자들마다 받
아드림의 정도가 다르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작과 진행이 다 하나님의 손 안
에 있다. 결국 살아있는 생명체의 다름의 시작과 진행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며 그분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보여준다. 
나와 ‘다르다’는 생각은 다양성을 받아들임이며 창조주에 대한 찬양이다. 
우리 서로가 하나님의 큰 울타리 안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받아들임이
다. 한 몸 안
에 많은 다른 지체들이 각각 자기의 일을 하면서도 아름답게 조
화를 이루어 전체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간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다름의 신비이다.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서
로 다름을 기쁘게 받아드리며, 오히려 나와 다른 점들을 발견하면서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하자. 
그런데 우리는 나와 다른 점을 볼 때 나와 ‘틀리다’로 받아드리는 경향이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다르다’와 ‘틀
리다’는 엄연히 구별된다. ‘틀리다’는 말은 나는 옳고 너는 옳지 않다는 
말이다. 너는 나와 ‘틀리다’고 선을 긋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심판 자리
에 앉은 것과 같다. ‘나는 의요, 너는 불의다’는 말이다. 
얼마나 쓰기에 두려운 말인가.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할 때,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나와 다른 그를 서서히 내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고, 도려내는 일
이 시작된다. 스며드는 물방울에 단단한 바위가 갈라지듯 분열이 시작된다. 
사단이 사람에게 가져다 준 결과물이 바로 분열이 아닌가? 죄의 결과 하나님
과 인간이 분열되었고, 인간과 인간의 분열, 육체와 영혼의 분열, 인간과 자
연을 
분열시켰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처음 창조의 생명체들은 다르면서도 크게 하나
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죄는 이 모
든 것들을 모래알처럼 분열시킨 것이다. 사망이 시작된 것이다. 분열은 곧 
사망과 같은 길 위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의 결국은 분열되었던 것들을 하
나 되게 한신 일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 인간과 인간의 화목, 인간과 
자연의 화목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이 하나되게 하
심이다. 서로 다른 생명체들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
었던 처음 창조를 더욱 영광스럽게 회복하여 하나되어 가게 하신다. 
구원이 완성될 신천신지에서 부활의 몸을 입을 구원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복제품이나,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처럼 똑같
은 모습이겠는가. 부활 때의 나는 바로 오늘을 사는 나이다. 부활 때의 우리
는 바로 다른 모습으로 오늘을 사는 각각 다른 우리들이다. 각각 다른 우리
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
이요, 영광스런 회복
이다. 
한 성령 안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신비이며 감사할 일인가. 내
가 상대하는 모든 사람이 모든 면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성
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깨기 시작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서로의 다름 기쁘게 받아야

모든 성도가 다 나와 똑같기를 원하는 바램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서로
의 다름을 기쁘게 받아드림이 성령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출발선이 아니겠
는가. 이제 ‘틀리다’는 단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주님이 쓰시도록 주
님께 돌려드리자.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다름의 신비 세계’를 맛보며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