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에서 왜 눈물이 사라졌는가?_박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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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앞에서 왜 눈물이 사라졌는가? 

박발영 목사 한우리교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행하셨습
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잊
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1: 23-26).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
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또 잔을 
가지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
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위한 십자가 기념해야

이 말씀은 성찬식을 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라는 말씀이었습니
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입니
다. 그런데 여기서 “기념하라”는 말씀은 “기억하여 지키라”는 뜻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기억하라”는 말씀은 “잊지 말라”는 보통 의미보다 더 강
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잊으면 죽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
로 이 해석이 옳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는 것을 잊으면 죽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
면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믿는 것
은 구원의 문제이고 영생의 문제입니다. 생사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알
면 살고 모르면 죽습니다. 믿으면 구원받고 안 믿으면 저주와 형벌을 받습니
다. 십자가 사건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충격적으로 경험해야 할 중대한 사
건입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단순한 신학적인 지식만으로 평
범하게 알면 안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을 십자가의 사건을 역사적 신학적 
지식만으로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행 2:36-
37).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
니라”고 말하자 그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에게 물어 가로되 

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십자
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을 치며 “내가 어찌할꼬” 하면
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스콜틀랜드 캠버스 랭에서 영적 각성이 일어날 때 일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30년 동안 신학을 가르친 노 교수였습니
다. 하루는 이 분이 무명의 목사가 하는 십자가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런데 그는 한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으면서 통곡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왜 그
랬을까요?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십자가의 속죄의 진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
고 3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깨닫고 보니 이제까지는 
교리적인 지식만으로 알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그 십자가의 주님
을 내가 만났습니다. 내가 그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
으로 내려오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하면서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그러했고 아브람 카이퍼가 그러했고 제롬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한
결같이 십자가에 사건을 충격으로 경험했던 자들 이
였습니다. 스펄전 목사님
은 어느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내용의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아무 반응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통곡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또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 모습은 어떻
습니까? 과연 우리 강단에서 피 묻은 원색적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까? 그리
고 십자가를 충격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진리를 평범하게 아는 지식만으로 죄와 세상과 악
한 영을 이길 수 있던가요?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너무나 평범한 지식으로 알고 있는 부끄러운 수준에서 
주님을 믿고 있는 것을 회개해야겠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
을 정도로 화석화 된 내 심령을 보면서 통곡해야 합니다. 돌처럼 굳어버린 
내 가슴을 보면서 탄식해야겠습니다. 강철같이 차가워진 내 얼굴을 보면서 회
개해야겠습니다.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신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함이 넘쳐야 합니
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거룩함이 사
라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
가 세속화 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
나님의 임재가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진정 우리 목회자가 탄식하고 통곡하
며 슬퍼해야 할 일이 이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