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름을 외워서 부르나?
과거에 60명 내지 80명이 한 반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년 초 출석
부를 가지고 들어 온 선생님이 출석부의 번호대로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댄
다. 학기말이 되면 웬만한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셔서 출석부도
보지 않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출석을 체크하셨다.
그런데 간혹 학년초부터 학생들의 이름을 출석부의 순서대로 외워 부르는 선
생님을 보곤 했다. 학생들은 신기한 듯이 선생님의 음성에 대답한다.
‘네.’ 어떤 학생은 ‘예’라고 대답하지만 존대할 자리에서 대답하는 말,
출석을 체크하는 자리에서는 ‘예’가 아니라 ‘네’가 맞을 것이다.
선생이 학생들의 이름을 잘 외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리 보아도 선한
일이다. 학생들에게 친근감을 안겨줄 수 있는 좋은 장점이다. 선생의 머리
가 굉장히 좋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는 기회일 것이고, 편리함에 있어서 출
석부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더욱 좋을 것이다.
교회에서도 교인들의 이름을 잘 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이
름을 외울 때 상대방이 싫어할 리 만무하다.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일 중 하
나가 양떼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다. 목회 좀 한다는 분들은 새벽마다 교인
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가?
옛날에 학생들의 이름 잘 외우기로 소문난 선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이름까지 그리고 내 이름까지 다 외워’, ‘참
신통해’ 하기도 한다. 학교를 오래 다니다보면 요즘도 그런 선생들이 종종
있다. 1년 내내 출석부를 보고 이름을 부르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학년초에
몇 번만 출석부를 보고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선생이 있다.
그런데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도 깊은 흑막이 내포되어 있다
는 소문이다. 왜 이름을 외워 부르는 것일까? 무슨 흑막이 숨어 있는가?
좋은 의미에 있어서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외워 부르는 선생님이 계시
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찾아와서 손을 붙잡고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 졸
업식에서 아무개야 이름을 부르며 축하한다고 말하는 선생님, 졸업한 지 28
년 만에 졸업장과 앨범을 가지고 나타난 선생님은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해
r
서 이름을 외운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선생이 학생을 사랑해서 이름을 외우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다. 직업상 외우는 선생도 있을 것이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외우
는 선생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고 상당히 머리도 좋
으며 기억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선생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자기 자랑을 위하여 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가 뛰어나고 다른
사람, 다른 선생들과는 다르다는 평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란다. 학적으
로 깊지 못하니까 그런 것으로라도 인기를 모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문도
들린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사람, 강자 앞에서 사용하는 약자
의 수법인 정치적인 의미에서 외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그
런 선생이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된다. 강자 앞에 약자의 처세술 중
의 하나 말이다.
어떤 지도자는 요즈음 이런 말을 한다. ‘그 사람 머리는 좀 있는 것 같은
데,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하겠어. 대통령을 중간에 그만두게 못하는 것처럼
그냥 시간을 보내야지. 어떻게 하든지 나머지 시간 협력해서 맡은
일을 하도
록 해야지. 얼마 안 남았어. 잠깐이야.’
좋은 소문이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울려 퍼져 나가는 법이다. 좋은 선생, 좋
은 목사, 좋은 지도자가 아쉬운 때이다. 사랑해서 학생의 이름을 불러주고
교인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지도자 말이다. 얄팍한 처세술은 당대나 당시뿐
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서 많은 것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철부지 초등
학생 시절에는 이름을 잘 외우는 선생님이 신처럼 보였지만 대학생이 되고
세상을 어느 정도 살고 나니까 이름을 외우는 사람의 마음까지 보이는 것이
다. 내가 상대를 아는 것처럼 상대도 나를 안다는 것을 그 선생은 모르는 모
양이다.
우리 주님은 나다나엘의 이름을 아셨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것도
아셨다. 나다나엘의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인 것도 아셨다. 참 이스
라엘 사람인 것도 아셨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 주셨다.
나는 주님이 좋다. 항상 내 이름을 불러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사랑
한다. 한번도 정치적으로 나를 불렀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하시기 위해서 내 이름을 부르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r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서 지금도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연약할 때나 범죄할
때도 여전히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불러주시기 때문에 좋아하고 사랑
한다.
이제 주님을 닮아가야 할 나이다. 철이 들 때가 지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언
제까지 정치적인 의미에서 출석을 부르며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름
을 부르겠는가. 정말 사랑해서 제자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는 일일까? 하나
님이 내 이름을 부르듯 양들의 이름을 친절하게 부를 수 없는 것일까?
이름은 부르라고 붙여 준 것이다. 좋은 의미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목사나
교수나 교사가 다 같이 양과 제자를 사랑해서 이름을 잘 외우고 부르는 사람
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