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과 성도들의 삶의 자세
장재훈 목사_내흥교회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9일 보도되자 놀라움과 두려움, 분노가 뒤섞
인 채 시민들의 마음은 흘러 다녔다. 또 전쟁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등의 걱
정 어린 말들과 대화들이 오갔다.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과거
협박이 현실화될까 걱정들을 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많은 국민들이 핵과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으로 못살겠
다고 아우성을 치는 형국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범죄 한 인
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죽음은 이미 누구에게나 정해진 것이다. 새
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죽음의 시기만 남았을 뿐이다. 이미 신자된 자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시작인 복이라고 믿고 배워 왔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왜 신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 부족, 불신앙, 내세에 대
한 불확실한 믿음 등이라고 지
적하고 싶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지속 현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
고 내세를 불신하는 불신자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씩이라도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
고 본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한 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이 잡히어 끌려가자
모두 도망치고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이 담대히 예루살렘 사거리에서
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앞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모두 평안하게 순
교들을 당했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이 아니다. 신실한 초대교회의 많은 남녀노소 신자들이
사자들 앞에서나 화형 앞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모습들이
진실로 거듭난 자들의 모습이다. 반면 교회당은 출입하고 있으나 진실로 성
령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갇혀 산다. 불신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힘있는
사람들을 더 두려워한다. 일반인들
은 물론 적지 않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동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보다 현
실 앞에서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하는 권력자들이나 힘있는 선
배들을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며 기술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교회 안팎의 권력자들 앞에서 아부하고 무슨 말만하면 웃고 온
갖 애교와 포장 된 겸손을 다 행한다.
신자된 자들은 하나님 외에는 어떤 분이든지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고 사랑
의 대상으로만 여겨야 하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옳지 않다. 생사의
결정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며 주님의 예정과 통치 아래 있는 것으로 신자
된 자들은 죽음에 대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어떠한 전쟁
이라도 우리의 생명을 취하지 못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살아야 한다.
신자에게 있어서의 죽음은 불행이 아니고 죄에 대한 형벌이면서 동시에 행복
이요 새로운 세계로 입성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선물을 두려
워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 이제는 죽음을 멀리
여행을 갔다가 오랜만에 찾
아온 친구처럼 맞이할 준비와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죽음이 즐거
운 것이 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참 신자에게는 영생, 즉 영원한 생명보
험이 약속되어 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시한부 인생을 산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들은 전부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아래에 있다. 어떤 힘있는 자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목회자들과 진실된 신자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고 두려워
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의 온갖 환난과 재난, 죽음, 힘있는 사람들을 두려워
하며 사는 것은 결코 적절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