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정체성, 신학교육으로부터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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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정체성, 신학교육으로부터 시작돼

송영찬 국장

초대 교회 시대 이후 5세기경 기독교 신학이 체계화되고 완성되었던 어거스
틴 이후 교회는 소위 황금기를 맞이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는 기독교 신
학만큼 완벽한 학적 체계를 갖춘 학문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좀더 정밀하
고 완성도 높은 신학을 위한 새로운 학문들이 들어설 정도였다. 당시 대학들
은 바로 이 신학을 위한 예비 학문을 위해 세워지기도 했었다. 

그만큼 신학이 절대적 지위에 서 있었던 만큼 교회의 권위도 독보적인 위치
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학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보편적 
학문이라기보다는 소위 가진 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보호되는 학문이었다. 그 
결과 당연히 하나님을 알고 교회를 위해 존재해야 할 신학이 가진 자들의 지
식적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적어도 천년
을 지속하면서 중세 교회 시대를 지배해 왔다.

이 시대를 가리켜 암흑의 시대(The Dark Age)라고 일컫는 
이유도 여기에 있
다. 이미 완성된 신학을 통해 바른 교회상을 제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최상의 
예배를 드려야 했던 교회들은 오히려 신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유희에 빠져들
고 말았던 것이다. 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신적 욕구 충족을 
위한 신학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빚어진 중세 시대의 비참한 현실
은 얼마든지 역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랜 암흑의 기간이 흐르면서 학문을 위한 신학과 개인적인 신비주의에 반발
을 일으킨 새로운 무리들이 등장했다. 바로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와 신학을 
하나님 앞에 되돌리려고 한 종교개혁이 그것이다. 

종교개혁 정신은 소외되었던 성경, 믿음, 하나님의 은혜로 시선을 되돌려 놓
았다. 그 결과 사람들의 학문적 유희 대상이었던 중세 신학이 비로소 제자리
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직 성경’만이 신학의 기준이 되었다. 또한 형식적
이고 화려한 교회 예식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은
혜’만이 강조되었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20세기 말에 우리 교단은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
활의 3대 개혁이념을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하
였다. 그리고 지난 25년의 시간
을 거치며 나름대로 개혁 이념을 확고히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그 첫 번째 과업의 성과가 바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였다. 우리 교단은 합동
신학교의 설립과 함께 발걸음을 맞추었고 오늘날의 합동신학교가 있기까지 혼
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바른 신학이 있어야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이 약속된다는 종교 개혁자들의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바른 신학
은 ‘오직 성경’을 외쳤던 개혁 신학의 첫걸음이었다. 

1983년 7월 3일에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던 장안교회(현 화평교회 전신)에
서는 창립 2주년을 맞아 기념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당시 장안교회 김윤동 
목사가 사회를 하고 고 박윤선 목사가 설교를 하였다. 이날 발행된 주보에는 
이례적으로 장안교회약사가 기록되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1980년 10월 말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신학 교육의 이념대로 지도하시기 어
려운 국면에 도달하여 부득이 총신대학원장직을 사임하시고 동년 11월에 합동
신학원장으로 부임하셨다. (중략) 이 신학원은 한 교단에 한 신학교를 인가한
다는 문교부 시책에 따라 교
단 배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실정 아
래 합동신학원을 지원하려는 교회들이 뜻을 모아 한 교단을 조직하려는 준비
기도회를 갖게 되었다(7월 13-15일).”

이 약사에는 1968년 박윤선 박사가 설립했던 한성교회를 떠나 오창옥 장로가 
제공한 장소에서 장안교회가 시작된 배경도 밝히고 있다. 고 박윤선 목사는 
‘1교단 1신학교 인가’라고 하는 문교부 정책에 따라 13년 간 몸담았던 한성
교회(당시 1973년부터 김진택 목사가 박윤선 목사 후임으로 담임하고 있었다)
를 떠나 새롭게 교단을 창설하기 위해 온 교우들이 힘써 건축한 한성교회당
을 포기하고 오창옥 장로가 제공한 사저에서 장안교회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합동신학교를 세우고 인준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교단을 
설립해야 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기 위함이었다.

이 약사를 통해 우리는 합동신학교가 세워지게 된 배경에는 개혁자들이 보여
준 바른 신학 정신에 입각한 고 박윤선 목사의 신학 교육 이념을 읽을 수 있
다. 동시에 우리는 당시 개혁교단(현 합신교단)이 탄생함에 있어 고 박윤선 
목사를 비롯해 대다수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과 성도
들이 새롭게 교단을 창설
하기 위해 기존의 좋은 여건을 포기하였으며, 그 헌신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합동신학교 설립에 최선을 다했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비록 설립 2주년 밖에 안되었던 한 교회의 약사라 할지라도 이 한 장의 주보
를 통해 급박했던 1980-81년의 역사적인 과도기를 재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느 시대라 할지라도 합동신학교를 설립했던 고 박윤선 박사의 바른 
신학 교육 이념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역사적인 요구 앞에 직면해 있음을 보
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 교단의 정체성 역시 바로 합동신학교의 교육으로
부터 찾아지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